왜 참았을까?

by 송나영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왜 그때 나는 참기만 했을까? 소리치지 못하고 짜증이라도 부릴 것을 무엇이 두려워 가만히만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다. 지금도 그 선생 얼굴이 떠오른다. 자기 반도 아닌데 남의 반에 들어와 제일 뒤에 앉았던 여자 아이의 가슴을 마음껏 주무르다 돌아갔다. 발육이 빨라 남보다 큰 키에 성숙한 몸을 지녔지만 5학년인 친구는 멍하니 정신줄 놓고 있다가 늘 그 선생의 제물이 되었다. 뒤에 앉아서 무방비로 당했던 친구와 나.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노골적인 손놀림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팔에 온 힘을 다 주던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오늘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또 올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복도를 지나다가 불러 앉히고는 어떻게든 한 번 성공해 보겠다고 질기게 파고들던 그 선생의 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배뿔뚝이 선생을, 웃지도 않으며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선생질을 하던 그놈의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다.

극성맞게 치맛바람 휘날리던 엄마의 활약으로 나는 선생들의 시선을 자주 받았다. 어려웠던 그 당시에 빵과 우유를 60여 명이 넘는 반에 쏘는 일은 드물었다. 빵과 함께 엄마는 교실에 등장했고 창피함과 당황함에 어쩔 줄 몰라했던 나는 선생들에게 족보가 넘어갔다. 엄마는 호텔로 선생을 불러 식사대접과 함께 월급에 준하는 돈봉투를 책에 끼워드렸다고 자랑스럽게 과거를 기억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 너구나 소리와 함께 학년을 넘기곤 했다. 엄마가 어느 날 옆반 담임을 얘기했다. 내가 가정교육을 참 잘 받았다고 그러더라며 당신 스스로 뿌듯해했다. 기가 막히면 말이 안 나온다.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걸핏하면 남의 교실에 침입해 손가락 장난을 즐기던 그 선생은 가정교육을 참 잘 시키셨다는 말을 엄마한테 했다. 운이 좋은 건지, 내가 지독했던 건지 한 번도 제대로 안 걸린 것이 참 가정교육의 결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왜 난 그때 그 선생이 이런 짓거리를 했다고 말을 못 했을까?

엄마의 돈봉투에 보답하기 위해 선생들은 나의 성적표를 고쳤고, 대충 엉터리로 써낸 시를 정성껏 손보아 전교생 앞에서 대상을 받게 했다. 절대 자기가 고쳐서 대상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던 선생과 의리를 지켰다. 택도 없는 전국 글짓기 대회를 준비했다. 어, 이렇게 쓰지 않았는데 대회 준비를 시켜주던 강 선생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원래 제가 잘 썼다 못 썼다 한다고 둘러대기 바빴다. 담임을 지키기 위해. 대회 준비기간이 지옥이었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다행히 끝났다. 하지만 다음 해 그 강 선생이 담임이라는 걸 알게 된 그 운동장의 추위를 기억한다. 하필이면 우리 담임이었다. 하필이면, 어쩌지, 들통나면 어쩌지, 그 거짓 대상작을 알아채면 어쩌지, 새 학기 시작하는 운동장에서 교장의 훈화는 들리지도 않았고 담임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3월의 추위는 매서웠다.

지긋지긋한 특권은 고등학교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학교에 들리는 소문이 있었다. 선생이 시험지를 판다고. 학생 집에 과외하러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렸다. 그 집은 아버지가 버스회사를 했다. 운동회 때도 남들 다 싸구려 나이롱 한복을 입고 춤을 출 때 그 아이는 비단으로 맞춘 한복을 입었다. 별나게 눈에 띄던 애였다.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한 시간을 붙잡고 있는 우리를 보기 좋게 따돌리고 그 애는 20분이면 다 풀고 호기롭게 교실을 나갔다. 아무리 잘하려고 애써도 그 시간을 맞추는 건 힘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했다. 왜라는 생각보다 어떻게 쟤는 저렇게 빨리 풀 수 있지 궁금했다. 그 답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엄마가 잠깐 다녀올 때가 있다고 했다. 내일 시험인데 어딜 가냐고 했다. 담임 집이었다. 그 시험지를 판다는 선생집이다. 선생은 내게 시험지를 내밀었다. 빨리 외우라고 했다. 말이 쏙 들어갔다. 이걸 외우라고? 내일 시험 볼 시험지를? 어떻게 외우냐고? 빨리 외우라는 독촉에 외우는 척을 했고 텅 빈 눈으로 들여다봤다. 중간고사를 망쳐서 엄마가 손을 썼던 모양이다. 아니 돈을 썼겠지. 그냥 시험을 봤다. 고3 마지막 시험이었고 애들이 이 사실을 알까 두려웠던 나는 문제를 그냥 다 풀었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선생은 내게 빨리 쓰고 나와서 다음 시간 공부하지 그랬냐며 내가 고마워하길 바랐다. 왜 나는 어두운 방안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했을까? 왜 시험지를 내미는 그 선생의 음흉한 미소를 걷어차고 나오지 못했을까? 왜 참기만 하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을까?

동생이 고3이 됐다. 하필 집안이 쫄딱 망했고, 동생에게 돌아갈 돈봉투의 위력이 없었다. 음대를 진학하기 위해 교습을 받으러 야간자율학습을 빠져야 했지만 선생은 단호히 거절했다. 오랜 시간 음대 진학을 준비했고 어렵다는 교수 강습을 받을 기회가 마련됐지만 담임 때문에 야자시간을 빠질 수 없었다. 그 야자시간에 담임은 없다. 과외하러 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엄마는 돈봉투를 마련했고 학교를 갔다. 하지만 선생은 과외하러 퇴근시간 끝나기 무섭게 사라져 자리에 없었다. 그 호혜는 엉뚱한 자가 받았다. 돈 밝히는 걸로 유명했던 선생이 엄마의 등장에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다. 자리에 없는 담임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엄마를 놓칠 리가 없다.

친구는 고등학교 3년을 보낸 뒤에야 내게 말했다. 돈 밝히기로 유명한 선생이 담임이었을 때 자신은 아침마다 꿇어앉아 있었다고 했다.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성적이 좋았고 늘 모범이었던 친구는 선생한테 돈봉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임원이었던 것이 미움을 산 거였다. 담임은 자신의 생신을 한 달 전부터 아이들한테 떠벌렸다. 자신의 시집도 자랑했다. 엄마가 시집이라도 받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엉뚱한 호혜에 대한 값으로 동생 담임에게 교습을 허락하라고 말을 해 준 것인가?

그렇게 선생을 배웠다. 선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교권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욕지기가 난다. 교권이란 말을 들을 만큼 교육자로서 자질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을까? 삐딱해진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가고 담임한테 전화가 왔다. 선도위원회가 열린다고 오란다. 선생이 선생다워야 하지 않겠냐고 음악선생한테 대들었다는 것이다. 앞뒤 사정은 하나도 없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도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 알려줄 아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주변을 수소문해 보니 음악선생이 삐딱하게 앉은 우리 애를 지목했다. 똑바로 앉으라고 몇 번을 얘기했다고 했다. 선생은 똑바로 안 앉으면 선도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학생이 학생다워야 된다는 말에 대한 답변으로 애는 선생이 선생다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선생이 제 성질을 못 이기고 계속 시비를 걸은 꼴이 됐으니 애가 발끈해서 그딴 말을 하고 만 거다. 친한 엄마들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고, 절대 선생한테 따지지 말아라 그러면 애만 손해 본다고 했다. 어떻게 할지도 모른 채 학교에 갔고 애한테만 왜 그딴 소리는 했냐고 다그쳤다. 솔직히 억울한 애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입에서는 애를 닦달하는 소리만 나왔다. 위원회가 열리는 교실로 들어가기 전, 높은 목소리로 한껏 떠드는 여자가 있었다. 쳐다보니 유난히 봉긋 솟은 어깨의 흰색 원피스의 남다른 차림의 여자였다. 주변의 시선을 다 모을 만큼 별나게 입은 여자가 목소리까지 높았다. 저 여자는 또 뭐지 하는데 담임이 왔고 곧 열릴 거라고 했다. 담임과 나는 둘 다 당황스러워했다. 다행히도 담임은 우리 애가 진심이 아니라고 믿어줬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목청을 높이던 여자가 나가자 담임은 저분이 음악선생인데 인사를 드릴 걸 그랬다고 했다.

오십이 넘은 선생이 여기에서 울고 갔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나도 오십이 넘었지만 여기 와서 울었다고?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그것도 선생이. 그럼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거지? 자기감정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애들을 제대로 훈계할 수 있는지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선생의 모자람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 채 아들 탓만 하고 나왔다. 우리 애가 잘못했고 우리 애가 너무 게임에 빠져서 그런가 보다는 엉뚱한 소리만 실컷 했다. 제대로 아들을 변명해주지도 못하면서 선생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빠져 괜한 소리로 아들만 잡았다. 부모한테 한 번도 큰 소리 내지 않던 애가 왜 그랬을까요?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난 비겁한 어미였다. 여기 와서 울고불고할 선생이라면 드센 애들이 득시글하는 교실에서 어떻게 애들을 제대로 훈육하겠냐고, 선생이 먼저 선도 보낸다고 협박을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게 교권이냐고 왜 나는 또 참고 앉아있었을까?

죄송한 마음 하나도 없이 죄송하다고 음악선생한테 전화를 했다. 끝까지 억양을 높이며 입으로 자신을 욕했다고 했다. 분명히 봤다고, 그 욕하는 입모양을. 나라도 하고 싶다. 너 같은 선생한테. 아들보다 더 심한 욕을 하고 싶다. 그래 그렇게 선도 보내서 애들한테 인정을 받고 싶냐고 너 같은 게 무슨 선생을 하냐고 말하고 싶다. 음악, 미술, 체육이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건 애들 탓이 아니다. 대입을 위해 쓸모없는 시간처럼 여겨지게 만든 교과 과정의 한 부분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예체능 대학을 지원하지 않는 한 전혀 소용없는 시간이 되고 만 것이다. 엉망이 된 교실에서 아이들과 감정싸움을 벌이며 애들을 교권이라는 명색으로 이겨보겠다는 알량한 마음이 불쌍하게 느껴진 것도 한참 시간을 지나서였다.

왜 그때 나는 제대로 할 말을 못 했을까? 몇 년을 속앓이를 하면서 그 상황을 재연하는 짓을 꾸준히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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