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옥, 그놈이 등장했다

by 송나영

그 이름을 신문에서 볼 줄이야.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데 등장했다, 그것도 멋있게. 형님의 인품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고 했다. 그 비열한 인품에 치를 떨고 기가 막혀 펑펑 울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86년 대학 입학 후 학교 바닥은 늘 최루탄 가루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예 바닥은 물청소를 하는 의미가 없어졌다. 늘 매캐하고 매운 가루를 밟고 다녀야만 했다. 4년의 학교 생활 중 2년 동안 출입을 거부당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등록금은 꼬박 챙기면서도 굳게 닫힌 문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도 밝힌 바가 없었다. 학교를 갔고 대문은 잠겼고 황당한 마음에 학교 주변을 배회하길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먹통의 시대를 살았다.

학생운동은 모조리 좌파라는 그때 나는 좌도 우도 아닌 회색분자였고, 그것 때문에 은밀히 따돌려졌다는 것도 졸업한 뒤에야 알았다. 세상의 탐욕과 부조리에 몸서리를 치면서, 세상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 좌파에 끼어보려고 했다. 무신론자들이 모여 해방신학을 읽는다. 유신론자인 나는 도대체 왜 밑줄을 긋고 외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고가 마비된 채 주입식 교육을 남발하며 후배를 지도하던 선배들. 토론이랄 것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 난무하는 그들의 세계도 꼴 보기 싫었다. 세상도 싫고 좌파도 싫었다.

'서울의 봄'이 분노를 유발한다지만, 그 시절을 통과해야 했던 나는 늘 까닭 없이 서러웠다. 오월의 푸른 하늘을 보며 이유도 없이 흐르는 눈물에 당황했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교 동창은 아주 초췌했다. 구속됐다가 나온 지가 얼마 안 된다고 했다. 숱한 총학생회 임원들은 다 피했다고 했다. 소위 잔챙이였던 그녀는 사범대를 다녔지만 빨간 줄이 그어져 교사는 포기했다. 우리는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한숨만 실컷 나누고 헤어졌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학회지를 만들었다. 간행물이 무조건 불법이던 그런 세상에서 말이다.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중학 시절부터 공부하고 싶어 들어왔는데 우리 과만의 정체성을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무조건 반대였다.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간다고 그딴 불온서적은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과대표도 아니면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런 거 하고 싶다고 내가 편집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학장이 나를 불렀다. 찾아가지 않았다. 학과장이 불렀다. 친구들한테만 교실에서 얘기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내가 무지했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운동하는 친구는 내게 주의하라고 언질을 주었다. 그게 채옥이다. 뒤통수를 친다고 했다. 경찰서에 운동권 학생을 알려주고 그 역할로 학교에서 신임을 받고 있었다.

채옥이가 불렀다. 간행물을 내자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 했다. 나는 신나서 떠들었다. 친구가 애들 이름은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부드럽게 누구와 함께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물었을 때 진심으로 친구들과 함께 이런 걸 하고 싶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 날 수업에서 나는 프락치가 되었다. 채옥은 출석을 부르며 어제의 그 친구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자기가 주시하고 있다 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기가 막힌 걸로는 표현이 안 된다. 숨이 막혔다. 내가 친구들 뒤통수를 쳤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은 나 때문에 채옥이한테 당하고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왔다. 문을 잠그고 대성통곡을 했다. 울음소리가 그렇게 클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채옥이는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쩔쩔매며 전화를 받아 건네주셨다. 어떤 통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는 이 인간과 상종하지 않으리라. 이 억울함을, 이 원통함을 어디에 풀지 몰라 헤매던 나는 글을 써서 전국에 알리고 싶었다. 이런 인간이 교수를 하고 있다고. 이런 인간이 대접받는 사회라고. 물론 그 인간도 어용교수라는 이름으로 학생들한테 난도질 당해 프랑스로 도피를 했다. 몇 년 뒤 자신을 난도질한 학생과 졸업을 명목으로 거래를 했다. 협잡은 늘 있는 일이다. 학회지는 다행히 끝났다. 한 권의 책을 얻기 위해 참으로 지난한 한 해를 살아냈다. 이름만 걸쳐둔 조교가 교수들에게 일 잘했다고 영광을 얻었다. 세상은 그렇다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30년도 넘은 기억을 소환했다. 분노는 가라앉았고 스무 살의 서러움은 사라졌다. 채옥이를 존경하는 동생의 기사에 나의 꿈이 떠올랐을 뿐이다. 나에게는 글이라는 새로운 길을 안내해 준 안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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