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어 보이는 당신의 오십

by 송나영

이거 어떡하면 좋으냐?

밤 12시가 넘어 귀가한 딸 방을 조심스레 열면서 당신은 수줍게 말했다. 조심스레 입을 열고 보여주는 앞니. 영구가 따로 없다. 하필 대문 한 짝이 뻥 뚫리고 말았다. 기가 찬 모습에 부녀는 마주 웃고 말았다. 돈 없는 아비와 아직 돈 벌 능력을 못 갖춘 딸은 멋쩍게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지. 궁핍한 부녀는 어금니가 빠졌으면 보이지 않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앞니냐고 입을 닫고 다녀야지 어떡해라고 이 고칠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돈 들어간다고 짜증 부릴 엄마가 알지 못하길 바랄 뿐이었다.

왜 그 기억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지 며칠째 머리에 맴을 돈다. 왜 빨리 이부터 고치시라고 돈을 챙겨드리지 못했을까? 돈 버느라 바쁜 엄마의 모진 눈총을 받아가며 부녀는 돈 못 버는 설움을 잊기 바빴다.

당신의 호주머니가 늘 비어있었을 거라는 걸 이제야 느낀다. 며칠 전 당신의 영탑을 다녀오면서 왜 나가지 않고 늘 집에만 있냐고 타박했던 내가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딱서니였는지 기가 찼다. 갑자기 흐르는 눈물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당신은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날 돈이 없었고, 술 한 잔 마실 돈이 없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 나간다, 나 오늘은 전철 타고 오이도 갔다 온다. 그냥 나가면 되지 왜 저렇게 어디 간다고 말씀을 하시는지 그땐 몰랐다. 당신의 외로움을 이제야 본다. 자식이라 해도 저 살 길 찾느라 바빴고, 당신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시간조차 내주지 않고 얼마나 옹색하게 굴었는지, 소파에 앉은 나를 보고 당신은 느닷없이 출애굽기부터 시작해 성경을 얘기하며 오래도록 나를 붙들면 나는 또 얼마나 바쁜 척을 하며 그만 듣고 싶어 했는지 그 시간은 왜 그리 또렷한 영상으로 나를 붙잡는지 모른다.

그 앞니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직업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뒤늦게 결혼을 하고 어린 아들을 키우느라 허우적댔다. 틀니를 하러 멀리 간다는 당신을 모셔드렸다. 엄마가 준 돈을 들고 야매로 틀니를 해주는 사람을 찾아 산본에서 공항동까지 그 먼 거리를 당신은 다녔다. 왜 나는 가는 길, 오는 길을 함께 하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바빠서, 뭐에 그리 쫓겨서, 생색내듯 어쩌다 당신을 공항동까지 모셔다 드리고 어린 자식 밥을 챙긴다고 급하게 차를 몰고 수원으로 돌아왔을까? 가끔 함께 하는 길에 당신은 또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고맙다, 고맙다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는 당신을 뒤로하고 나는 야멸차게 돌아왔다. 왜 한 번도 그 야매현장을 함께 하지 못했을까?

게임하느라 바쁜 아들이 어쩌다 문이라도 열면 화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는 나는 당신의 그림자를 느낀다. 당신도 그랬겠지. 내가 아들의 눈치를 보듯 당신은 성질머리 고약한 딸의 눈치를 보며 말할 기회를 엿봤다. 당신의 그 눈빛을 이제야 안다. 내 안의 당신이 오롯이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밤늦도록 술 퍼마시느라 자정을 훨씬 지나 먼동이 터서야 들어오는 딸을 당신은 밤새 기다렸고, 사춘기 열병을 앓느라 밤이면 도둑고양이처럼 돌아다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동네를 서성이고, 누웠다 앉았다 새벽을 밝히며 나는 당신을 기억했다. 아들의 방황을 지켜보며 소파에 묵묵히 앉아 그저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던 당신을 배웠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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