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배운다.

by 송나영

집들이를 위해 경동시장에 가서 바리바리 사들고 딸도 없는 집에서 음식을 했다고 한다. 일하는 딸을 위해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딸을 기다렸다고 한다. 엄마가 그럴 수 있다는 걸 듣고서야 알았다. 양손 가득 장본 걸 들고 힘겹게 버스를 오르내리고 음식을 장만했다는 엄마를 들었다. 충격이었다.

백일잔치는 소박하게 양가 어른들만 모시고 식사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아이의 할머니는 다들 올 거라고 했다. 누가 오는지 몰랐다. 몇 분이나 오시는지 듣지 못했다. 그럼 대충 고기나 구우면 되겠네요. 몰라도 너무 몰랐다. 동생이 먼저 시집갈 때 엄마는 요리하는 분을 불렀고, 내가 시집갈 때도 누군가가 와서 요리를 도와주었다. 집들이는 요리하는 분을 부르고 차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자란 나는 두 다리 뻗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요리하는 분을 부를 형편은 안 됐고 그냥 대충 차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댁 분위기도 익히기도 전이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인 줄도 모르는데 누가 온다는 건지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오전 11시가 좀 지나자 집 근처에서 건설회사를 하는 시댁의 작은아버지가 회사 식구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다. 밥도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반찬도 없는 상황에서 얼이 나가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모르는 시가 식구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사촌, 육촌 동서들이 손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었다. 방마다 사람들이 꽉 차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루종일 동동거리고 점심을 보내고 저녁 손님을 맞아야 했다. 애아빠 회사 식구들과 친구들이 온다고 했다. 준비된 재료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해물탕으로 대충 얼버무리자고 했다. 해물탕도 제대로 끓일 줄 모르는데 어떻게 했는지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좁은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왔다. 우아하게 차를 몰고서 딸네 왔다. 거실과 방에 바글거리는 손님을 뒤로하고 3층의 좁은 거실로 안내했다. 곱게 차려입고 온 엄마는 수수팥단지와 음료를 드시고 앉은자리가 데워지기도 전에 일어섰다. 설거지하느라 바쁜 나는 부엌의 작은 유리창으로 엄마와 아빠가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경동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딸도 없는 집에서 혼자 음식을 차리셨다는 엄마의 얘기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그네의 딸은 정말 그냥 가셨냐고 놀랐다. 내 엄마가 남다르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낯설었다. 처음으로 만난 아이의 눈을 보면서 나는 서늘함을 느꼈다. 내 안의 엄마였다. 다른 엄마보다 냉정했던 엄마가 한순간에 이해가 됐다. 당신 망년회를 위해 어린 두 딸만 남겨두고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왔고 그걸 이해 못 해 그냥 서럽기만 했던 나는 그제야 알았다. 부모님이 들어오시기만을 기다리며 동생과 둘이 티브를 보다가, 목이 빠져라 밖을 내다보다가 결국 쏟아지는 잠에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연말연시는 당신의 모임 때문에 일찍 들어올 수 없었고, 명절은 돈 버느라 힘든 당신 자신을 위해 절집으로 기도하러 가기 바빴다. 명절 전날 밤새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만든 것으로 당신의 도리를 다 했다. 장녀라는 이유로 나는 그 음식을 만드는데 조수역할을 해야만 했고 하기 싫은 눈치라도 보이면 팔자타령을 들어야 했다. 남편 복 없는 여자는 자식 복도 없다는 말로 이어지는 서사를 박복한 당신이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혼신의 연기를 통해 들려줬다.

늘 혼자 지냈던 나는 낯가림이 심했고 엄마가 없는 빈 시간을 서럽게 느끼며 컸다. 엄마 없는 서러운 시간을 아이한테 물려주기 싫어서 하던 일을 멈췄다. 산후조리원으로 온 엄마는 대뜸 왜 거들을 안 입느냐고 했다. 배가 잔뜩 나왔다고 타박을 했다. 밥 한 끼 먹으려면 온몸의 진액이 다 땀으로 나오는지 줄줄 흐르는 땀 때문에 밥조차 먹기 힘들었다. 나보고 그렇게 힘드냐고 했다. 남이면 차라리 욕이라도 할 텐데, 내 밑으로 남동생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아이와 살을 부딪고 한시도 안 떨어지려는 아이를 돌보며 엄마가 되어 갔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왔는데 순하고 잘 울지도 않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조바심을 쳤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 입에 손을 대고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했더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애가 배가 고파 우는지 기저귀가 젖어 우는지 분간을 못했다. 아이는 분유 한 통 타놓은 것을 다 못 먹었다. 한여름에 거의 한 시간마다 분유를 타고 반 이상 남아 버리는 게 아까워서 냉장고에 넣었다 그냥 줬다. 그 차가움에 두 눈을 번쩍 뜬 아이는 속이 시려서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호호 숨을 내쉬었다. 조심성이 부족한 나는 두유를 먹이기 위해 조금씩 섞어 먹이는 것조차 몰랐다. 처음 마시는 두유를 한 통 가득 부어줬다. 아이는 지금도 두유를 먹지 않는다.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육아에 지친 나는 매일 아이 아빠와 싸웠다. 결국 일주일에 세 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면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살 거 같았다. 아주머니는 아이 안는 법, 애 재우는 법을 알려주셨다. 아이를 업고 여유 있게 집안일을 도와주셨던 아주머니 덕분에 은행을 가고 동사무소를 들리는 콧바람의 호사를 누릴 수가 있었다.

내 안의 엄마는 아이와 놀 줄 몰랐다. 커다란 종이 한 장을 주고 혼자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지켜봤다. 실 한 뭉치를 주고 온 집안에 거미줄을 치는 걸 기다렸다. 아이와 단 둘이 놀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대문을 열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기에 동네 아이들이 다 와서 놀았다. 입이 짧아 잘 안 먹던 아이는 동네 형과 함께 밥을 먹었다. 동네 아이들이 들락거리면서 놀아주기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나의 모성은 늘 의심스러웠다. 아이한테 잘해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모성을 책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빠와 엄마가 튀어나왔다. 꼼꼼했던 아빠와 달리 덜렁거렸던 나의 칠칠치 못함은 늘 잔소리를 불렀다. 그렇게 싫었던 그 잔소리를 똑같이 아들한테 했다. 당신이 대접받지 못하면 바로 서러움을 토로했던 엄마의 말을 그대로 했다. 다른 집 애와 비교하는 말을 지독히 싫어했는데 똑같이 했다. 아이가 사춘기를 겪을 때 나를 참아준 아빠가 떠올랐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 달달 볶던 나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와 점점 사이가 벌어지고 급기야 아이가 입을 다물어버렸을 때 나는 그대로 나의 엄마였다.

'마요네즈'라는 소설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머리에 잔뜩 바른 마요네즈, 그건 바로 늘 대하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의 따뜻함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함께 시장을 다녀오며 같이 들었던 장바구니가 내쪽으로 기울어져 애를 썼던 기억은 또렷하다. 대학을 입학하고 스무 살까지만 부모가 해주는 거라고 넌 왜 누구네 아들, 딸처럼 돈을 벌어서 부모한테 갖다 주지 않느냐고 당신이 그랬다. 당신 친구 딸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그 친구가 손주를 키워주고 살림도 해준다는 말도 했다. 부러웠다. 당신의 친구를 둔 딸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었기에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서른 중반이 넘어 결혼한 나는 체력도 안 돼 늘 허덕거렸다. 친정에 들러 잠시 누구를 만나러 나갔던 그 한 시간에 엄마는 전화했다. 네 애 안 보고 어디 갔냐고.

엄마는 아직도 힘들다. 잘하려고 애를 쓸수록 더 힘들었다. 경동시장에서 장을 보던 엄마를, 자식만 낳으면 키워주겠다는 엄마를 듣고 배웠다. 그네들이 키운 딸들이 자식에게 어떻게 하는 지를 보며 따라 했다. 하지만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나는 어색하기만 했다. 나는 아직도 마요네즈를 읽을 수 없다. 마요네즈를 잔뜩 바른 당신의 강렬한 인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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