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by 송나영

빨리 나이 사십이 되길 원했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불혹이라는 단어는 매혹적이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가 마흔이란다. 공자는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마흔을 살았나 보다.

매일 흔들린다. 아침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갖은 유혹에 시달린다. 내 삶만 궤도를 이탈한 듯싶다. 멍하니 넋을 놓고 생활을 꾸리기 위한 돈벌이로 바쁘다가 허탈해졌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 우울과 조울을 넘나 든다. 도대체 그 불혹이라는 걸 언제 느낄 수 있는 건지 마흔을 넘어 아니 오십을 넘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

늙는 게 서럽다더니 여기저기 부실한 몸뚱이는 마음까지 늙게 만든다. 돈 버는 재미에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조금씩 늘어가는 수입에 내 치아는 하나씩 허물어졌고 그렇게 번 돈을 치과에 갖다 바쳤다. 머리가 무거워 자주 드러누웠다. 영양제 하나 맞으려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너무 높단다. 수액을 놔주지 않는다. 몇 주 뒤 다시 수액을 맞으러 갔더니 혈압 때문에 또 안 된다고 한다. 게다가 혈압을 꾸준히 측정한 게 없어 혈압약 처방도 안 된단다. 의사는 일주일 동안 혈압을 재서 써오라고 했다. 무섭지 않냐고 했다. 본인의 부모님이 혈압이 높아 돌아가셨기 때문에 자신은 열심히 살을 빼고 관리를 한다고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서운 줄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는 겁이 난단다. 다음엔 쓰러진단다. 두 가지 숙제를 내준다. 살을 빼고 혈압을 재서 적어오란다. 프린트를 해 갔더니 공책에 써오란다. 의사의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의 협박은 계속 됐다. 이러다 죽습니다. 어차피 죽는다.

병원을 바꿨다. 왜 다니던 병원을 옮겼냐고 의사가 묻는다. 하도 죽는다고 말해서 듣기 거북해 옮겼다고 했다. 운동을 하란다. 왜 살을 안 빼냐고 만날 때마다 들들 볶던 의사보다 한결 낫다. 혈액검사 결과가 좋단다. 어떻게 관리했냐는 말도 들었다. 입만 열면 이러다 죽습니다라는 말을 안 들어서인가 확실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혈압도 떨어졌다. 그동안 왜 이렇게 센 혈압약을 먹었냐고 했다. 내가 먹고 싶어서 먹었나 되도록 피하려고 했던 약인데 주는 대로 먹은 거다. 혈압약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혈압약을 안 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초점이 잘 안 맞는지 눈이 불편해 안과를 갔더니 백내장이 왔다고 했다. 백내장은 나하고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누구나 온다고 한다. 아직 백내장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심해지면 해야 한다고 한다. 여름 끝자락에 먼 길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눈부심이 심해서 거의 실눈으로 고통스럽게 운전을 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주 새까맣고 짙은 선글라스를 맞추러 바로 갔다. 서른다섯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책을 뒤로 빼는 순간 노안이 왔음을 알고 가슴이 서늘했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침마다 핸드폰으로 신문을 읽었는데 점점 눈이 시렸다. 책을 읽으면 어른거렸고 점점 책과 멀리하기 시작했다. 책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가까이했더니 눈은 더욱 시리고 침침해졌다. 눈의 피로를 줄이려고 화면 주시 거리 기능을 켜두고 악착스럽게 쓸데없는 영상을 본다.

몸이 늙으니 마음은 초고속으로 늙어간다. 무기력과 게으름을 오가고 나른함과 졸음을 번갈아 탔다. 늘어진 자신을 탓하고 우울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느라 용을 썼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도 지나온 만큼 가야 할 텐데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몇 년 전부터 대학원을 진학하겠다고 이 학교, 저 학교 홈페이지를 펼쳐 봐도 막상 하고 싶은 공부가 뚜렷이 없다. 이력서를 폼나게 채워줄 학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걸 다시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싫었지만 결국 핸드폰만 붙들고 산다. 하루 대부분을 유튜브 영상을 아무거나 찾아보면서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때우고 있다. 어쩌다 본 무당 영상 하나에 알고리즘은 유튜브 바닥을 오방색으로 물들여놨다.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 매일 흔들거리고 산다.

처음으로 주식을 했다. 통장에 잔고만 생기면 단기, 중기, 장기로 보험을 넣으라고 방카슈랑스 팀에서는 득달같이 전화가 온다. 시키는 대로 하니 그들은 나를 호구로 생각한 것이다. 호구 맞다. 다달이 번 돈이 모아지기 무섭게 이자도 형편없는 갖가지 저축보험에 넣었으니 말이다. 삼성전자 주식이 만 원일 때 사볼까 하는 생각은 삼만 원으로 십오만 원으로 어느새 백만 원으로 올라있었다. 백만 원이라도 살까 했는데 가보지 않은 길이라 관뒀다. 그게 백오십이 됐을 때 후회했다. 친구가 앱으로 주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주식통장 개설하느라 진땀을 뺐다. 앱 하나 설치하는 것도 버벅거리는 나이가 됐다.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산 주식이 대박이 났다. 갖고 있던 보험을 몽땅 깼다. 치과에서는 치조골 수술에 관련된 보험이 있냐고 했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무려 9개나 뼈이식 수술을 했으니 너무 아깝다고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투자라는 신세계를 발견하고 제대로 따지지 않고 보험을 다 깨버린 후에야 알게 됐다. 옛날에 가입한 보험에만 그 혜택이 있다고 했다.

파란 바다로 바뀐 주식을 보며 매일 아침마다 한숨을 내쉰다. 적당한 선에서 발을 뺄 걸 뒤늦게 알게 된 돈맛에 정신을 못 차린 결과였다. 코인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코인을 알려주는 대로 샀다. 이렇게 쉽게 버는 것을 진즉에 몰랐던 나의 경제지식에 한탄을 했다. 세상이 코인같이 불확실한 투기에 너무 몰두한다고 신문마다 떠들어댈 때 그 시끄러운 세상에 돈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몰랐다. 남들 다 한바탕 휩쓴 유행을 뒤늦게 올라타서 경제 공부한다고 주식과 코인 투자방송을 눈이 아프도록 봤다. 무모한 나의 투자는 마이너스 5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95%를 자랑하는 코인도 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물타기라는 방법으로 사고 또 사는 바람에 지하 깊숙이 묻고 말았다. 언젠가 좋아지겠지 막연한 기대감으로 나 스스로 위로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앱을 열어 확인하고 시무룩해지곤 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공자는 나이 사십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는데 내 나이 사십이 되면 그럴 줄 알았다. 마흔 살은 무언가 확실하게 흔들리지 않을 줄 았았다. 물 흐르듯 세월에 맡기며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함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만 하면 잘 산 거지라고 위안했다가 도대체 해놓은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아 허망했다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미혹 속에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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