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키오스크 앞에서 맥을 못 춘다. 햄버거 세트 하나 선택하기가 왜 이리 복잡한지 게다 기껏 선택했더니 결제가 안 된다. 차례를 기다리던 뒷사람은 옆에 있는 키오스크로 자리를 옮긴다. 버벅거리면서 다시 시작하다 보니 슬슬 눈치가 보인다. 잘 안 돼서 결국 매장 직원에게 부탁할 때도 있다. 버튼 하나 누르는 게 참 힘들다. 읽고 있어도 읽지 못한 느낌이다.
기계치가 분명한데 그래도 그럴싸하게 기계치가 아닌 척 세상을 속일 만큼은 기계를 다룰 수는 있다. 모두가 기계치였던 우리 가족은 십자드라이버, 망치 정도면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다. 스카치테잎으로 적당히 붙이고 못질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고난도로 치면 형광등 가는 정도였다. 기계치인데 힘까지 좋아서 내가 만지면 고장이 난다. 아이가 어렸을 때 한겨울 영하 십 도가 넘는 추위에 과천 현대미술관을 다녀올 때다. 차창문 내리는 걸 하도 꾹꾹 눌러서 결국 그 추위에 사달이 났다. 창문이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않은 채 가운데를 버티고 있었다. 그 추위에 찬 바람을 막지도 못하고 쌩쌩 달렸다. 기계치인 주제에 아무 버튼이나 막 누르는 무모함까지 갖췄다. 인천 골목을 헤매다가 양보해 줘서 고맙다고 비상등을 찾았다. 아무거나 눌렀는데 뭔가 아닌 듯싶다. 4륜을 2륜으로 바꾸는 단추였던 것이다. 차가 이상해졌다고 투덜대는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아이도 내가 컴퓨터를 건드릴까 봐 두려워했다. 컴퓨터를 매일 켜놓는 아들이 하루는 컴퓨터를 꺼놨다. 웬일인가 싶어서 전기를 아낀답시고 전원을 껐다. 집에 들어온 아들은 사색이 됐다. 업데이트 중이었는데 엄마가 전원을 끄는 바람에 업데이트가 이상해졌단다. 부팅이 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 부팅조차 안 됐다. 다시 컴퓨터를 초기화시키기까지 참 많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참 친해지기 어려운 존재가 컴퓨터였다. 매일 사용하면서도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몇 번을 들어도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내 머리는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만 쏙쏙 가려 뱉어내곤 했다. 이해를 하고도 돌아서면 잊었다. 코로나로 바뀐 세상에 키오스크가 점점 더 많이 등장했다. 동네 슈퍼마켓도 셀프 계산기로 바뀌고 누구 하나 알려주는 이가 없어 그 앞에 서서 공부를 하곤 했다. 아침에 간단히 장을 보려고 슈퍼에 갔다. 매장에 계산하는 줄이 길어서 호기롭게 셀프 계산대로 갔지만 시금치에서 절망하고 말았다. 도대체 시금치를 누르는 버튼이 안 보이는 거였다. 다시 그 계산대의 긴 줄 끝으로 돌아왔다. 내 수준을 받아들여야 했다. 기계 앞에서 괜히 아는 척하지 말고 사람을 찾아 조신히 기다려야 했다.
키오스크가 컴퓨터보다 간단할 건데 선택해서 누르기만 하면 될 텐데 왜 그게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뭘 덜 읽나, 안 읽어서 그런가, 아무 거나 눌러서 그런가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앱도 그렇다. 하라는 대로 했는데 안 될 때가 훨씬 많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혹시나 이것 때문에 뭐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그나마 불안해지면 다행인 거다. 적어도 아무 거나 누르지는 않으니까.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 컴퓨터를 만졌을 때 그 시커먼 화면에 DIR이라는 단어밖에 입력할 줄 몰랐으니 내겐 컴퓨터가 무용지물이었다. 8비트, 286, 386 내가 아는 컴퓨터 사양이 이제는 먼 과거가 됐다. 글을 쓴다고 원고지를 사용하고 타자기를 치는 건 그때도 뭔가 한물간 느낌이 들어 컴퓨터를 장만했다. 몇 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거금 이백만 원을 들고 용산을 찾아갔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컴퓨터 사러 왔다고 했다. 무슨 프로그램이 필요하냐고 해서 그냥 글자만 쓸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나의 오랜 남자친구는 나의 무식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그 비싼 돈을 주고 컴퓨터를 사면서 그 따위로 알아보지도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이랑 같이 가야 사기 안 당하는데 덜컥 사버린다고 나의 무모함과 무식함에 깊은 탄식을 했다. 어쨌건 샀고 잘 사용했다.
컴퓨터가 고장 나면 돈은 더 많이 든다. 바이러스를 먹어서 부팅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주변의 컴퓨터 출장 수리를 찾았다. 출장비 오만 원에 초기화를 시켜줬다. 한 번은 보드에 말썽이 생겼다고 했다. 오래된 컴퓨터라 중고를 찾아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이십만 원을 줬다. 조카한테 컴퓨터 수리한 얘기를 했더니 기가 막혀한다. 잘 모르니 돈이 많이 드는 것이다. 얼마큼 줘야 적정한지도 잘 알지 못하니 늘 당한 기분이 든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영어 동영상을 보려고 재생단추를 눌렀다. 엄마 이게 뭐야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화면 가득한 야동에 당황해서 컴퓨터를 꺼버린 것으로 출장수리는 막을 내렸다.
키오스크는 점점 늘어나고 스마트폰의 기능은 점점 더 스마트해지는데 나는 먹통이 돼 간다. 아무 거나 눌러서 고장내기를 잘하는 솜씨를 가진 나로서는 기계가 점점 두려워진다. 예전에는 읽지도 않고 무조건 누르고 켜보던 습관을 그나마 고쳐서 이제는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열심히 읽어본다. 하지만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는 건 여전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후 가전제품을 스마트폰에 연결했다. 물론 그것을 연결하기까지 몇 번의 실패를 거쳐야 한다.
매대에서 친절히 응대해 주는 점원의 목소리가 그립고 자세히 알려줘서 고마운 마음이 절로 나는 예전이 그립다. 일 년 만에 간 속초의 단골 식당에서 식탁마다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었다. 주문을 했더니 배달 로봇이 음식을 날라다 준다. 세상은 변해가고 내가 늙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 주는 키오스크가 반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