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by 송나영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쉽게 마음을 열고 쉽게 마음을 닫아버리는 내 탓이다. 유튜브 동영상도 알고리즘에 따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혼자서 잘 사는 법, 가스라이팅에 관한 영상이 수두룩하다. 수년간 호구로 도대체 왜를 반복하며 또 당한 건가 가슴을 치기를 여러 번 한 끝에 입을 다물게 되었다.

사람 사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무 쉽게 허물없이 만나고 쉽게 사람에 지치는 내가 문제인 거다. 묻지도 않는데 굳이 내 이야기를 줄줄이 풀어놓는다. 상대가 당황해서 무엇을 이야기할지 어떻게 나를 대해야 하는지 허둥대는데 나는 눈치도 없다. 어떤 이는 내가 하는 속얘기에 자기 얘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라는 표정을 지을 때도 있다. 그런 거였다는 것을 안 지도 얼마 안 된다. 어느 날 아침 문뜩 설거지를 하다가 상대방은 궁금하지도 않은데 쓸데없이 나의 이야기를 속 깊은 것까지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워하던 얼굴도 하나 둘 떠올랐다.

나를 포장하는 것이 거추장스러웠기에 홀딱 나 자신을 발가벗긴 것은 바로 나였다. 왜 나는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상처를 받는지 참 미련스럽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쉬쉬하는 세상이 우스워 보였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럴듯하게 말하는 세상이 싫었나 내 속을 드러내고야 마는 이 우직한 미련함의 근원이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심하게 사춘기를 앓았다. 워낙 순했던 아이라 크게 혼낼 일도 없었다.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들의 게임문제로 적잖이 속앓이를 했었지만 그래도 크게 엇나가는 일 없이 지냈다. 순하니까 모든 게 천천히 온다. 아이가 입을 다물어 버릴 정도로 나에게 실망한 이후에 답답한 마음에 학교를 찾아갔다. 담임이 왜 이제야 오셨냐고 꼭 뵙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가 가정 설문 조사서를 썼는데 부모 전화번호를 기재하지 않았고 안 쓰겠다고 했단다. 아이가 마음을 닫고 입을 닫은 후 노심초사하며 지난날을 곱씹으며 눈물을 삼킬 때였다. 담임을 붙잡고 애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담임이 아이에 대해 꼭 알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재혼가정이며 이복누나가 있다고 했다. 갑자기 선생은 커튼을 치면서 다른 선생들이 들으면 안 될 것처럼 굴었다. 좁은 교무실에서 안 들리겠는가?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아들을 순식간에 문제 있는 가정의 아이로 만들었다. 자신은 아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1학년 때부터 동아리담임이라 쭉 지켜봤다고 했다.

학교에서 나오랜다. 담임이 자리에 없었다. 학생주임이라는 영어선생이 다가와 우리 아이한테 관심이 많다며 집안 얘기는 담임한테 전해 들었다고 했다. 무언가 내밀한 비밀을 읊조리듯 은밀히 얘기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킨 거라고 그들은 판단했다. 수년이 지나 아들의 마음이 누그러지고 나서 물어봤다. 너네 담임이 동아리담당이라 1학년때부터 지켜봤다고 했더니 아들은 무슨 소리냐고 자기네 동아리는 담당선생이 없었다고 했다. 그저 지켜만 본 게 맞는데 내가 '관심 있게'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 게 문제였다.

요령이 없단다. 내가 사람 사귀는데 요령이 없다고 했다.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해서 왜 분란을 만드냐고 첫 만남에 우리 가정은 이러하다는 내 말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이가 그랬다. 종교모임이라 서로 마음을 나눈다기에 솔직하게 자신을 소개해야 되는 줄 알았다. 이웃의 숟가락 몽둥이까지 참견하는 아줌마들을 만나다 보니 차라리 처음부터 터놓고 사귀었다. 나와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늘 나를 설명해야 했다. 피로했다. 왜 나의 삶을 설명하면서까지 이 사람들과 사귀어야 하는지 점점 지쳐갔다. 아들한테 관심 없는 애아빠를 설명해야 했고 같이 쇼핑을 하면서 왜 이렇게 아들한테 잘해주냐는 타박을 들으며 내 아들한테 사주는 물건을 간섭받았다. 지독한 솔직함 못지않게 지독한 직설가인 나는 참다 참다 결국 그네에게 질투할 일을 질투하라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집안 얘기를 속속들이 나한테 다 들었는데 매번 사줘라 마라 할 일이 뭐가 있냐고 했다. 그네의 남편은 아이들 선물을 늘 보따리로 풀어주는 사람이라 그네가 뭘 사 줄 일도 없었다. 그이는 내가 아들한테 너무 잘해서 자기가 너무 못하는 거 같다고 했다. 나를 간섭하지 말고 자기가 잘하면 될 일 아닌가?

세상이 점점 좁아져간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평화롭다. 쓸데없는 참견과 쓸데없는 요구에 멀어져 간다. 거절의 미학은 날로 발전해 가고, 내 마음이 힘들 거 같으면 굳이 설명하지 않고 피하는 요령도 생겼다. 말을 줄여서 생긴 결과다. 두 달마다 다니는 동네 병원 의사가 운동하냐고 묻는다. 네. 짧은 나의 답에 대답은 잘한다고 의사가 웃었다. 삶의 지혜더라고요 같이 웃었다. 나도 아들한테 배운 거다. 하지도 않으면서 네라고 답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늘 답이 길어 변명을 늘어놓지만 아들은 후딱 네라고 대답하고 절대 하지 않는다. 얼굴 붉히며 말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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