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자식을 키우는 모든 분들께 존경을 보낸다. 남의 자식은 참으로 쉽지 않다.
학교선배로 만나 오랜 시간 잊고 지냈다. 늘 부르면 언제든 어디든 달려와 주던 사람이어서 힘들 때마다 위로의 연락처였다. 대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닥친 경제적 어려움은 참으로 힘겨웠다. 마음도 고달팠는데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까지 받고 안팎으로 서러웠다. 그 힘든 시간을 선배를 불러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걸로 풀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갈 길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는 연중행사처럼 뜸하게 만났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나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내일 결혼한다고 선배 어머니가 전했다. 누굴 사귀는 줄도 몰랐는데 그동안 나를 위로해 줘서 고마웠다는 말도, 축하의 인사도 못 한 채 전화를 끊었다.
아이러브스쿨이 문제였다. 같이 일하던 직원이 아이러브스쿨을 꼭 해보라고 권했다. 신세계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접속자들이 있는지 당최 연결이 안 됐다. 서너 시간의 버퍼링 끝에 간신히 가입을 했다. 세 번째로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그 문자를 본 순간 선배가 이혼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 그래 예전에 고마웠다는 말은 꼭 해야지, 선배 덕분에 내가 그 시절을 살 수 있었다는 말을 꼭 해주리라 마음먹고 출근길에 전화를 했다. 산본에서 신도림 사무실까지 통화를 했다.
서울역에서 얼굴이 빨개진 선배를 만났다. 일하다 나간 나는 꾸질꾸질했다. 그에게서 그동안 살았던 얘기를 들었다.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나를 좋아했다는 말도 그제야 들었다. 늘 나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말을 못 했다고 했다. 서른 중반을 넘어 일에 지치고 사랑에 지쳤던 나는 믿을 수 있던 선배와 일사천리로 결혼을 진행했다. 자식 딸린 이혼남과의 결혼에 엄마의 반대가 말도 못 했다. 애 딸린 홀아비랑 결혼해야겠냐고 밤마다 엄마의 홀아비 타령을 들어야 했다. 엄마와의 싸움도 지쳤고 일도 지쳤고 그냥 쉬고 싶었다.
딸을 만났다. 눈치만 살피는 딸은 매일 선물을 요구했다. 나중에는 거짓말이 역력한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꼭 필요하다고 사달라고 했다. 아이는 선물을 사랑으로 여겼다. 결혼 날짜는 다가오는데 과연 내가 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너무 심란했다. 아이 할머니와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이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내 눈치를 살폈고, 할머니의 어쩔 줄 몰라하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그 생경한 모습을 밥을 먹는 내내 지켜봐야 했다. 아이와 만나고 오면 밤마다 내가 정말 얘를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너무 컸다. 아이를 만난 친구는 내가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보통내기가 아닌 듯하다고. 눈칫밥을 먹고 자란 아이는 사랑을 물질로 갈구하며 외줄 타기를 했다. 아이는 할머니한테 늘 친엄마 욕을 듣고 자랐다. 아이는 거짓말이 나쁜 줄도 몰랐다. 아이는 매일 6시가 넘도록 어린이집에 미술학원에 피아노 학원에 뺑뺑이를 돌았다.
딸한테 너무 못해줘 미안하다고 딸만 키워달라고 했다. 언니가 엄마가 됐다. 딸이 생겼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 놀란다고 애 할머니는 나에게 딸의 친엄마 흉을 봤다. 조부모는 친엄마를 못 만나게 했다. 친엄마가 어느 날 애를 몰래 데리고 갈까 봐 늘 노심초사하며 조부모는 집 주변을 살폈다. 새엄마가 생겼다는 소식에 놀란 친엄마는 부랴 부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찾아갔다. 애를 데려갔다.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애가 보고 싶다고 애 멱살을 잡아끌고 간 바람에 애는 밤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갓난아이와 내 눈치만 살피는 딸 사이에서 혼이 나갔다. 딸의 친엄마를 만나서 아직 애가 안정이 안 됐으니 잠시만이라도 애가 적응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남의 자식은 정말 힘들다. 남편은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애는 자라온 환경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잘못 들인 버릇을 잡기도 힘들다. 아이니까 모든 걸 내가 맞춰야만 한다. 내 자식은 뒷전에 뒀다. 하지만 나에게는 새엄마라는 꼬리표에 의혹이 주렁주렁 붙어 다녔다. 애 조부모와 외증조모는 늘 딸에게 밥은 먹었는지 따로 물어봤다. 어느 날 군것질이 하고 싶었던 딸은 새엄마가 밥을 안 줬다고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 밥 먹은 지 한 시간도 안 돼 집안이 뒤집어졌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어찌나 난리들을 치는지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밤마다 우는 딸을 데리고 무작정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인터넷을 뒤져 병원을 찾고 그냥 갔다. 어린 아들을 등에 업은 채 무조건 봐달라고 했다. 예약을 안 해서 안 된다는 걸 애가 공포에 떨어서 잠을 못 자니까 제발 꼭 봐달라고 부탁했다. 간신히 검사지를 받고 아이를 등에 업고 몇 시간을 서서 검사지를 채웠다. 의사는 딸이 어려서 학대받은 적이 있는 거 같다고 애착형성이 잘 안 돼서 많이 힘들 거라고 했다. 딸이 사춘기 때 무척 힘들게 할 거라고 했다. 늘 달려와주던 선배는 운전하기를 싫어했다. 같이 병원에 올 때마다 우리는 대부분 싸웠다. 광역버스를 타고 애를 업고 걸리고 한 시간이 넘는 그 거리를 몇 년을 다녔다. 사람들로 꽉꽉 찬 퇴근길 버스 안에서 등에 업은 아들은 울고 먼지 잔뜩 묻은 공갈젖꼭지를 입에 물리며 뱉어내면 또 물리면서 왔다.
설날에 딸 친엄마가 면접교섭권을 신청하는 소송 문서를 보냈다. 설에 시작한 소송은 추석이 지나서 끝이 났다. 해결방법을 찾을 생각도 없이 변호사 비용부터 걱정했던 선배 때문에 무료 법률 사무소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봤다. 변호사가 알려주는 대로 답변 문서를 작성했다. 나에게 미안하다는 선배는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냐고 답변서에 쓸 말을 묻는 나와 싸웠다. 딸 담임과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 딸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탄원서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딸의 친엄마를 만나서 나 때문에 당신이 손녀를 못 만나고 산다고 울었다고 했다. 딸은 일주일마다 용돈 받으러 할아버지한테 갔지만 선배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고 황당해하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새엄마의 위치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딸은 친엄마를 만나기 싫어했다. 심리상담가가 애를 만나본 이후에 끝이 났다.
아이를 잠시 봐주셨던 아주머님은 의붓자식은 제 아비한테도 의붓자식이 된다고 했다. 선배는 딸만 봐주면 무엇이든지 다 해줄 것 같았지만 딸부터 나에게 맡겼다. 결혼 일 년도 안 돼 나는 새로 태어난 아이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딸을 데리고 허우적댔다.
나는 남의 자식을 키우는데 실패했다. 남의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도 못했고 사춘기를 지나며 감정의 골이 깊어져 멀어졌다. 딸아이가 커다란 거울을 깨는 꿈을 꾸었고 남의 자식과 '파경'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