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

by 송나영

이사를 했다. 거의 이십 년만의 일이다. 살던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길 십여 년만에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집을 내놨는데 아파트 꼭대기층이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없다. 꼭대기층이긴 하지만 앞집도 없고 대문 앞에 훤히 뚫린 창으로 밖이 내다보여서 아파트치고는 답답하지 않았다. 창 앞에 토마토도 길러보고 화초도 키웠다.

훨훨 멀리 이사 가고 싶었지만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안 된다고 했다. 여기가 제일 낫다고 그래도 살던 동네에 있으란다. 다른 데 보다 집값이 오를 거라는 말에 결국 다른 동으로 눌러앉았다. 집이 안 팔렸는데 급매가 나왔고 주변의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집을 보지도 않고 잡으려 했다. 집을 꼭 보고 사야 된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만류로 집을 보러 갔다. 베란다 앞쪽의 푸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결정했다. 녹음이 시원했다. 사장님은 여기저기 설명해 주셨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푸른 잎사귀에 결정이 났다.

이사 갈 곳은 정해졌는데 내 집은 안 팔렸다. 혼자만 천하태평이었다. 부동산 전문가인 지인은 집도 안 팔렸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아침저녁으로 닦달이다. 집을 내 논 부동산 사장님도 잠을 잘 수 없다는데 나 혼자 느긋했다. 온 주변의 걱정과 달리 다행히 한 달도 안 돼 임자가 나타났고 드디어 내 집이 팔렸다. 무엇보다 내 집값을 낮춘 게 큰 몫을 했다. 급매로 집을 싸게 산 만큼 욕심을 버렸다. 게다가 집을 팔려고 온 짐을 다 치우는 극성을 떨었다. 휑하니 텅 빈 공간에 가구도 없는 집을 만들어놨으니 말이다. 골드스타 에어컨까지 떼어 버려서 결국 더위에 굴복하고 후다닥 에어컨을 샀다. 너무 일찍 몽땅 쓸어 버려서 쓰던 매트리스까지 다 갖다 버리는 바람에 매트리스도 새로 샀다. 돈을 이중삼중으로 썼다.

임대 사업을 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졸지에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됐다. 인테리어 공정을 짜주고 전문가들을 알려줘 가능했다. 도움도 컸지만 그 도움이 간섭이 되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살 집인지 그이가 살 집인지 구분이 안 됐다. 세탁기가 놓일 뒷베란다는 깨끗하니까 그대로 쓰고 앞베란다는 본인이 했던 타일이 이쁘니까 그걸로 하고 그렇게 결정을 하고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다시 업체를 찾아가 타일을 새로 정했다. 돈을 아끼라고 하지 말라는 뒷문짝도 다시 했다. 손잡이가 뻥 뚫린 문짝을 보면 두고두고 속 썩을 거 같다. 이상한데 강박증이 있는 나는 못 견딜 것이다. 행운도 작용했다. 문짝을 맞추러 간 업체에서 알려준 마루전문 업체를 찾아가다 우연히 얻어걸린 마루 도매상에서 놀라울 정도로 싸게 했다.

내가 살던 집은 머리털 나고 처음 이사한 집으로 도배, 장판도 안 하고 들어갔다. 이사경험이 없으니 도배, 장판을 할 시간도 없이 이사를 강행했고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황당해했다. 짐을 놓기가 기가 막혀서 나를 쳐다봤다. 대문을 연 순간 누가 봐도 청소도 안 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이었던 것이다. 거실에 깔린 유행 한참 지난 오랜 모노륨 장판에다 여기저기 찢긴 방바닥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대충 청소를 하고 아저씨들은 나를 피해 살림을 늘어놓았다. 꾸질꾸질한 집이 칙칙했다. 동네 지인이 셀프 인테리어를 알려줬다. 도배를 처음 했다. 그 성공의 기쁨은 방 하나에서 시작해 거실까지 이어졌다. 벽이 깔끔해지니 너저분한 바닥이 눈에 가시였다. 데코타일을 사다 붙였다. 식구들 모두 다 잠든 새벽에 나 혼자 바닥재의 마지막을 붙인 그 감격으로 거실에 그대로 앉아 날을 샜다. 접착제가 녹아 나온 것을 다 지워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기운이 안 남아 그대로 살았다.

다시는 내 손으로 인테리어를 안 하리라 꼭 업체에 맡겨서 돈을 펑펑 쓰면서 인테리어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치솟은 인테리어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도움의 손길도 있으니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음료수를 사다 나르고 인사만 한 후에 내 일을 하러 나왔다. 내가 참견한다고 일이 잘 될 것도 아니고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다.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났고 다음 공정을 담당한 분들과 통화로 조율해 주셔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혹여나 가외비용이 더 들어갈 부분은 굳이 필요 없다고 하지 말라고 알려주셨다. 거의 반값에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호사를 누리리라. 인테리어 공사도 싸게 했는데 나머지는 몽땅 내가 좋아하는 가구로 채우리라. 가구점을 찾아 나섰다. 좋아하는 브랜드 가구도 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결정했다. 처음 간 곳에서 민트색상의 가죽소파에 꽂혔다. 전시품 판매라 싸게 준단다. 마음에 들면 몽땅 몰아 사는 나는 한 곳에서 침대며 식탁까지 다 고를 기세였다. 같이 간 지인이 뜯어말렸으니 망정이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입본장이 거기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마음에 드는 입본장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온갖 엔틱가구를 다 뒤졌다. 근처 가구점을 둘러보다 우연히 들어간 곳이 엔틱 가구 전문점이었다. 마음에 드는 가구가 많았다. 침대 매트리스를 먼저 사는 바람에 맞는 침대 고르기가 어려웠다. 유럽형 슈퍼싱글을 샀더니 거기 맞는 침대가 몇 개 없었다. 왜 매트리스를 먼저 샀냐고 했다. 모르는데 성미가 급해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사 가기 전에 새 침대를 사놓고 이삿짐을 쌀 수는 없으니까 침대 매트리스라도 새 거 사서 쓰고 싶었다. 그게 다 돈을 부른다. 가구를 구경하기 위해 층을 올라갈 때마다 하나씩 샀다. 오죽하면 가구점 사장님이 그만 올라가라고 했다.

몇 년만의 호사인가. 결혼할 때 신혼가구를 산 적이 없다. 결혼 전에는 방에 달랑 매트리스만 놓고 살았다. 애 아빠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속에 천불이 날 때마다 가구를 구경하러 갔다. 소파를 보고 가구를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프렌치 엔틱 가구도 소품으로 샀고 한때 유행했던 프로방스 풍의 작은 그릇장도 사면서 마음을 달랬다. 쓰다가 누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또 주곤 했다. 충분히 많이 봤으니까 그만 봐도 족했다.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은 엔틱 가구가 필요했다. 쉽게 질리지 않을 엔틱가구를 충분히 돈 주고 사고 싶었다. 처음 들어갔던 가구점에서 마음에 들어서 샀던 침대를 배송받았는데 전시장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금테를 반짝반짝 두른 모습에 너무 놀라서 바로 환불을 해달라고 했다. 저 금테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게다 이태리 엔틱이라는 그 제품은 너무도 조잡스러웠다. 각목을 이어 붙인 바닥재에 속은 걸 알았다. 도저히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무려 오십만 원의 배송비를 내고 환불했다. 속이 쓰렸지만 오랜 시간 그걸 보고 짜증 내는 것보다는 낫다.

가구점으로 백화점으로 마음에 드는 가구를 사러 다녔다. 마지막으로 산 식탁은 만들어서 배송까지 무려 거의 20주나 걸렸다. 가구점에서 맞춰도 그것보다 빨리 올 텐데 인내심의 한계치를 넘어갈 즈음에 환불하고 다른 걸로 사려는 참에 도착했다. 드디어 구색을 맞췄다. 모든 가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내 돈 펑펑 쓰면서 호사를 누린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눈에 걸리는 가구가 없다는 점이다. 아 저거 괜히 샀어. 돈 더 주고 살 걸, 이런 생각 없이 오랫동안 이거 저거 보러 다니면서 꼭 필요한 것들로만 골랐다. 기껏 샀더니 MDF라 자리를 옮길 때마다 톱밥가루 날리며 빠개지고 뒤판의 스테이플러가 뽑혀 벌어지는 일도 겪었다. 싸지도 않은데 모양만 이뻤던 가구들이다. 또 싼 맛에 사서 후회한 제품들도 많았다. 요즘 가구를 이쁘게 놓겠다고 요리조리 옮기는 맛도 난다. 나이 오십이 넘어 새로 장만한 가구와 함께 편안히 늙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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