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by 송나영

나의 오지랖 전통은 유구하다. 오지랖을 떤 뒤에 꼭 뒤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지랖을 떤다. 그게 다 내가 오만해서 그렇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뭐가 잘 났다고 내가 해주겠다고 그렇게 설쳐댔을까. 힘이 넘쳐서 시간이 넘쳐나서 해주는 게 아닌 이상 하지 말아야 했다. 하고 싶지 않은데 모른척하고 싶은데도 오지랖을 떠는 바람에 후회를 하곤 했다. 마음이 넓지도 않은데 왜 하고 후회하고 뒷말을 듣는지 이게 다 내가 미련한 탓이다.

도배는 남의 손에 맡겨야 되는 줄 아는 우리 식구들은 나의 무모함에 놀랐다. 혼자서 방 세 개와 거실 도배를 다 했다는 말에 동네 지인들도 진짜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 그 잘난 척이 다른 집 도배까지 떠맡게 됐다. 거실을 새로 도배하고 싶은데 돈은 아끼고 싶은 옆집 언니에게 내가 해주겠다고 게다가 쉽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늘 허리가 아파 골골거리고 한의원을 들락거리는 판에 내 몸 힘든 것도 잊고 하겠다고 나섰다. 괜찮을까 고민을 하는 언니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지물포에 가서 도배지를 고르며 앞장을 섰다. 도배지를 펼치고 풀칠을 하려는 찰나에 언니의 지인이 들이닥쳤다. 며칠 언니와 도배 문제로 고민을 나눴던 그분은 나의 도배 솜씨가 못 미더워 본인이 인테리어 공사한 업체에 직접 전화를 해서 거실을 도배하는데 얼마인지 물어봐줬다. 거실 바닥에서 풀칠을 하는 나는 참으로 뻘쭘했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도 했다. 하지만 역시 돈이 문제다. 생각보다 거실을 도배하는 비용은 비쌌고 언니는 그냥 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다. 이미 기분은 잡쳤고 신나게 일할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꼼꼼하게 하는지 쭈글쭈글하게 벽지가 우는 데는 없는지 그 지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며 내가 왜 이걸 하자고 했는지 속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도배를 끝냈다. 진짜 도배 혼자서 했냐고, 괜찮냐고, 나도 혼자 할 수 있겠냐고 몇 번이고 물어볼 때 혼자 하라고 아니면 도배를 맡기라고 간단하게 말해야 했다. 그럼 내가 해줄까요로 몇 번의 질문 끝에 오지랖을 떤 결과였다. 뒤에서 이 잡듯이 채근하며 잘못된 데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언니의 지인과 함께 해서인지 도배를 끝내고 그냥 뻗었다. 저녁 밥 할 기운조차 남지 않았다.

내 오지랖은 남편까지 끌어들였다. 옆집에 놀러 가서 우연히 포장도 뜯지 않은 현관열쇠를 봤다. 우리 집 대문 열쇠는 애 아빠가 직접 했다고 했다. 그이는 눈을 반짝이며 자기네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집은 달아 줄 사람이 없었다. 한겨울에 보일러도 안 틀고 냉골에 사는 알뜰살뜰한 옆집엄마는 당연히 기사를 부를 생각을 안 했다. 그 길로 돌아와 애 아빠를 들볶았다. 혼자로도 모자라 남편까지 챙겨서 오지랖을 떨었다. 한 달 내리 옆집엄마 전화를 받은 끝에 남편을 붙들고 제발 한 번만 해달라고 데리고 갔다.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역시나 전등 하나 못 가는 남편을 둔 이웃을 딱하게 여겨 거실 조명을 갈아주러 또 나섰다. 못질 하나 못하는 그 남편의 빈정거림에 우리는 기분이 상했고 싸웠다. 남편의 출장 수리는 거기서 끝났다.

왜 기운이 남지도 않은데, 마음이 넓지도 않은데 오지랖을 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자식의 친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아이의 외할머니가 암에 걸리셨다고 꼭 한 번만 아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 아빠는 절대로 거기 안 간다고 했다. 애 아빠도 안 간다는 데 왜 마음에 걸렸을까, 한 번만 만나고 싶다는데 그걸 왜 못하는지 해주면 되잖아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미련함은 상처를 부른다. 그럼 내가 애 데리고 가겠다고 또 나섰다. 원자력 병원에 도착해서 아이를 데리고 병실에 들어갔다. 아이 외할머니와 친엄마,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함께 계셨다. 아이를 반기는 외할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이고 남의 자식 키우는 팔자도 참이라는 말은 지금도 또렷하다. 기가 막히면 입도 닫힌다. 후다닥 병실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어느 할아버지가 보조석 자리를 후진으로 충돌하는 데도 보험이고 뭐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갈 자리가 아닌 데 간 것이다. 친엄마 보고 애를 데리고 가라고 부르면 될 일이었다.

오지랖 떠는 일이 많아지면 상대는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인다. 늘 해줬는데 왜 안 해주는지 너무 당연하게 요구할 때가 있다. 오히려 화를 낸다. 멀리 가는데 힘들까 봐 차를 태워줬더니 비 오는 날 멀리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 운전할 줄 모르고 비 오는 날 운전해 본 적이 없으니 운전하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색내지 않으면 당연한 줄 안다. 아버지 기일에 맞춰 포천을 갈 일이 있었다. 때마침 친한 이가 근처 남양주에 있는 보살님 집에 갈 일이 있다고 태워달란다. 그이의 어머님까지 태워달란다. 정말 안 하고 싶었다. 하고 싶지 않은 건 거절해야 맞다. 자기네가 가고 싶은 날짜까지 정해준다. 정한 날짜는 하필 아버지 기일로 미뤄졌다. 잘 됐다고 가는 길이니까 다행이라 했다. 남양주를 거쳐 포천으로 돌아가야 했다. 포천을 거의 도착할 즈음 연락이 왔다. 자기네는 볼 일 다 보고 길에서 기다린다고 천천히 내려 준 곳으로 오란다. 또 한 번 그 모녀의 먼 여정을 동행한 뒤에야 운전기사를 멈췄다.

즐거운 마음으로 떤 오지랖이 길어지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굴레가 되고 후회와 상처를 남긴다. 기운이 있을 때 마음이 넘칠 때 오지랖도 떨 일이다. 미련해서 생채기를 만든다. 나이가 드니까 힘이 달린다. 참으로 다행이다. 힘이 달리니 저절로 겸손해진다. 이제는 내가 해줄게 소리가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데 내가 먼저 나서는 바람에 상대도 얼마나 난감했을지 그 마음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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