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생채기에 굳은살이 생길 만도 한데 여전히 쓰라리다.
믿음이 깨진 결혼, 신뢰가 무너진 관계,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노심초사하는 불안함을 끼고 살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살기를 내뿜으며 휘두르는 폭력을 견뎌야 했다. 그 눈빛이 떠오르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개흙이 확 폭풍우처럼 몰아치곤 했다. 진흙탕이 되어 버린 마음이 다시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핏줄이 터질듯한 눈을 떠올리지 않으려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아이의 비염이 낫지를 않는다. 항생제를 여섯 달이나 먹이니 일곱 살밖에 안 된 아들은 키가 자라지도 않고 얼굴이 노랬다. 알레르기가 심한 아들을 데리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도 했다. 먼지, 진드기, 풀 등등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인자가 많았다. 먹는 것에는 알레르기를 안 일으키니 천만다행이었다. 병원에서는 집에 물이 많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아이 아빠의 취미는 물고기 키우기다. 작은 어항에서 시작해서 하나 둘 늘다 보니 거실 한쪽을 차지했다. 아이의 비염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회유도 하고 알랑방귀도 떨어봤지만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어항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마음이 없다. 병원에 갔다 온 날은 내 화가 폭발하는 날이다. 어항 좀 줄이자고. 제발. 아이가 이렇게 아픈데 온 집안을 수족관을 만들 참이냐고 성질을 부렸다.
여름 장마철은 지옥이다. 집안의 습도는 동남아를 넘어선다. 제습기를 틀어도 소용이 없다. 줄어야 할 어항은 점점 늘어만 가고 물고기는 늘어간다. 구피 몇 마리에서 시작했는데 돼지코 거북이, 가재, 새우, 이끼 청소하는 애까지 종류도 숫자도 늘었다. 지극 정성을 기울이는 어항을 고양이처럼 하루종일 들여다본다. 코가 부풀어 올라 항생제도 듣지 않는 아이는 쳐다보지 않는다. 아이는 녹초가 되어간다.
제발 어항 좀 치우라고! 결국 거실의 어항은 박살이 났다. 흥분한 눈은 아빠의 눈이 아니다. 천장까지 쌓아 올린 어항을 다 때려 부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어찌할 줄 모르며 소리 내 운다.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고 어항 속 자잘한 자갈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물고기는 몸부림을 친다. 물은 철철 흘러 13층에서부터 폭포를 이루고 쓸려 내려간다.
입을 다물었다. 어항 잔재를 다 치울 때까지 눈도 닫았다. 불안에 떠는 아이들은 눈치만 살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커다란 상자가 배송됐다. 베란다 넓이에 맞춘 어항을 만들 유리가 도착했다. 베란다 벽면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족관으로 채웠다. 횟집을 차리는 줄 알았다. 그 유리가 수압을 못 이겨 터져 나가는 날까지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 아빠는 폭력 가정에서 자랐다. 경부선 도로를 닦았다는 그네 아버지는 며칠씩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파이프며 몽둥이로 아이들을 다스리는 일부터 했다. 말도 하기 싫어하는 아빠보다 푼수 같은 아빠가 낫지 않냐는 그도 결국 그 아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버텨야 했다. 애들을 키워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 그를 이해했다. 상처는 깊숙이 생채기를 남겼고 돌아보지 않으려고 바다를 갔다. 바다나 갈까? 어린 아들은 버티고 선 나에게 말했다. 텅 빈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아들을 데리고 바다를 갔다.
모래사장에 앉아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생채기가 아물기를 기다렸다. 아들의 상처는 보듬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아프고 쓰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