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브라보! 끝났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흥분으로 가득 차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이십여 년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이혼에 합의한 게 맞냐고 판사가 물었다. 네! 그 사람에게도 물었다. 대답이 없다. 다시 판사가 물었다.... 네. 조마조마했다. 아니라고 할까 봐. 이혼하자고 협의문서를 작성해서 책상 앞에 뒀다. 집을 나한테 넘기겠단다. 한 달 뒤 법정에서 만나면 됐다. 한 달을 천년처럼 기다렸다. 가정법원 가기 전날 문자가 왔다. 헝가리로 갑자기 출장을 간다고 집을 넘겨줬으니 이혼만은 안 하고 싶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졌다. 어떻게 기다린 십 년인데. 어떻게 버틴 십 년인데. 장문의 문자를 썼다. 두렵다. 나는 네가 두렵다. 더 이상 마음 졸이며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미 남인데 그는 아직도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십 년이나 말을 안 하는 집사람으로 말이다.
결혼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여긴 내가 설 자리가 아니구나. 이른 아침에 찬거리를 사러 집 앞 가게로 가다가 문득 낯선 감정에 사로잡혔다. 장막에 휩싸인 거 같았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일에 지쳐 결혼했지만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육아와 살림에 찌들어갔다. 도대체 여긴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설 자리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을 했다.
첫 번째 대전을 치르고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왔다.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전에 절대로 다시 안 가리라 마음먹었다.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구구절절한 사연만큼 구질구질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어떻게 인연을 이어 붙일 수 있을지 앞이 캄캄했다. 첫 돌도 안 된 아이의 슬픈 눈망울을 달래줄 힘조차 없었다. 아이는 칭얼대지도 않았다. 아이를 보내고 머리를 깎으리라. 큰스님이 나를 절로 보내라는 말을 엄마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펄쩍 뛰던 엄마도 이번에는 그렇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결심을 한 순간 아이는 내 눈을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를 붙들고 다시 살기로 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듣지 못하고 돌아왔다. 나를 계단 아래로 떠밀어 내쫓았던, 12월 31일 눈 쌓인 거리에 맨발로 쫓겨난 집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으니 새집으로 옮기라고 했다. 버티고 사는 수밖에 이를 악물었다. 복도식 아파트에 대문을 열면 저수지가 시원히 보였다. 속이 터질 때마다 산을 오르고 저수지를 돌면서 버텼다.
깨져서 금이 간 믿음은 떨어져 나갔다. 두 번째로 집안을 아수라장을 만들었을 때 여섯 달 이상 입을 다물었다.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다 잡기 위해 하루종일 필사를 했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계셔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딸이 크게 다칠까 봐 노심초사 불안에 떠시던 아버지에게 헤어지겠다는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만신창이가 돼 들어온 딸을 보고 당신은 할 말을 잃었다. 부모가 싸우면 아이만 불쌍하다고 외손자를 딱하게 여겼다. 다음은 끝이라고 전했다.
느닷없이 애아빠는 하던 일을 때려치웠다. 생활비가 떨어졌다. 무엇에 씐 사람처럼 난리를 치더니 그네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사업체를 팔았다. 나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집에서 살림만 했던 내가 왜? 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친한 언니가 알려준 한약방에 갔다. 화병이란다.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서 아이 친구들을 모아 독서 수업을 시작했기에 생활비를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수업을 끝내고 늦은 저녁을 먹던 날 결국 사달이 났다.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졌고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감쌌다.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할 거냐고 본가로 돌아갈 것인지 여기 살 것인지 물어봤다. 본가에 안 간다고 했다. 알았다는 말과 함께 마음을 닫고 말을 끊었다.
외갓집에 가서 살 건지를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안 간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엄마한테 아빠는 남이니까 아빠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집에서 별거를 했다. 친한 후배에게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 몰랐다고 아들한테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웬만한 일에는 스크래치가 안 난다고 했다. 아들에게 네 아빠에게 전해라 마라 하는 말을 안 하는 걸로 그 사람을 외면하면서 숨을 고르고 살았다. 얌전하고 순했던 아들은 고등학교를 가면서 점점 더 곪아갔다. 왜 이혼을 안 하냐고 다른 부모처럼 차라리 이혼을 하지 왜 이렇게 사냐고 화를 냈고 밖으로 돌았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아이는 불안에 떨며 잠을 못 잤다. 추석이 지나면 나는 학교에 불려 갔다. 아들은 아빠한테 반항하지 않았다. 입을 닫고 마음을 닫았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말하지 않았고 나 또한 묻지 않았다. 아들은 집을 떠났다. 불안함에 손을 떨던 아이는 혼자만의 방으로 나갔다.
포기한 지가 언젠데... 처음으로 아들의 마음을 들었다. 술힘을 빌려 말했다. 한 학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말에 기쁨이 앞서지만 걱정이 한 짐이었다. 또 명절은 돌아왔고 아들 방을 두드리며 친가에 가자고 소리를 높였다. 아비의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숨죽이며 듣고 있었다. 아들은 끝내 문을 열지 않았고 혼자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또 한 해를 넘겼다. 십 년을 기다렸는데 끝내자는 말을 하기 위해 시간을 엿봤다. 해는 더디게 갔다. 조용히 끝내고 싶었다. 헤어지는 기간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끊어버린 말을 잇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자꾸 말을 걸어왔다. 이혼을 앞두고 기나긴 순애보를 문자로 보냈다. 미안하다는 말대신에 자신은 영혼을 잃었었다는 말로 간신히 가라앉힌 내 분노를 다시 끌어냈다. 첫 번째를 놓치고 두 번째 확인기일에 가정법원에서 기다렸다. 길게 늘어선 줄에 그 사람은 없다. 앞 뒤에 선 부부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식구들에게 어떤 말을 전할지 한참을 얘기를 나눴다. 헤어지는 사람들 같지 않다. 오래 기다린 끝에 나타났다. 맨 뒤에 선 그 사람 옆으로 거리를 두고 섰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법정을 나오면서 아들이 언제 군대를 가는지 물어봤다.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망치듯 뛰어나와 바로 동사무소에 가서 이혼 신고를 했다. 십 년이 끝났다. 버티지 않고 살 수 있다.
이제 살 것 같다. 내 인생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