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by 송나영

제가 다 치우고 가겠습니다. 중문을 설치한 사람이 여기는 그대로 둬서 제가 따로 해놨습니다. 보기 싫잖아요. 창호 하는 분이 폼을 제대로 쏴주지 않고 여길 그냥 뒀더라고요. 바닥 높이를 맞춰서 제가 처리했습니다. 마루를 다 깔면 전화드리겠다고 먼지만 날리니까 끝나고 오라고 하시고는 구석구석 빠진 부분들을 다 채워주셨다. 마루값이 너무 싸서 인건비를 따로 드려야 하는 게 아닌지 마루 건재상에 전화를 했다. 따로 드리지 않아도 된단다. 바닥을 시공해 주시는 기사님이 너무 겸손하셔서 내 손이 부끄러웠다. 추석을 앞에 두고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거라서 미안한 마음에 과일 박스를 들고 공사현장을 찾았다. 마루 철거를 하고 도배하시는 분은 벽을 평탄화하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 아휴 이런 거 사 오지 마세요.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룻바닥을 드러낸 공사현장은 말끔하게 청소가 돼 있었다. 바닥을 깨끗이 밀어 청소하고 아직 공사를 시작도 안 한 철거만 한 집인데 이렇게 깨끗하다니 기사님의 솜씨는 부끄러워하는 자랑으로도 충분히 짐작됐다.

마루는 마지막 작업이었다. 내 눈에는 띄지도 않는 부분까지 세심히 꼼꼼히 다 챙겨주셨다. 자재 쓰레기가 문제였다. 어떻게 하지요? 돈을 받고 치워주신다고 했다. 기사님은 돈을 받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셨다. 항상 해맑게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본인이 돈을 더 원하는 것처럼 여겨질까 봐,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씁쓸하게 여기셨다. 낯설었다. 하지만 당연히 받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 안주는 일을 원하는지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글쓰기를 밥벌이로 하기 위해 작가 교육원이라는 데도 다니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돈벌이가 안 되는 글쓰기는 카드빚만 늘려놨다. 기획안 하나라도 쓰려면 여기저기 취재를 다니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게 다 돈을 부른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돈 한 푼 들어오지 않는 일을 벌이고 다녔다. 소규모 프로덕션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대기업 사내 방송의 원고를 써주고 난 늘 돈을 떼였다. 중간에서 담당자가 돈을 떼고 나머지를 줬다. 나중에 갚는다고 돈을 먼저 빌린다. 대기업은 사내 방송을 외주 주는 것이 아까워 담당 대리를 시키기로 했고 일은 끝났다. 어린이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해달란다. 당장 하루 이틀 사이로 열 편짜리 비디오 프로그램에 쓰일 원고를 써달랜다. 밤을 새워서 그들이 준 미술 교재를 뒤져 만들어갔다. KBS 방송국의 미술팀에서 오래 일했다던 미술전문가는 거만을 떨고 이렇게 쓸 거면 자기가 하겠단다. 돈을 못 받았다. 소규모 프로덕션 사장은 망했다. 밀린 글값은 받지도 못했다. 언성을 높이고 싸워도 돈은 안 나온다. 집이 날아간 사장은 도와달란다. 또 그 사장과 일을 함께 꾸렸다.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돈을 안 주려고 두 눈을 부릅뜬다.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고쳐라 그게 다 돈이 드는 일인데 그건 생각하지 않는다. 입만 달고 산다. 기획안을 만들고 몇 개월의 수고를 한 뒤, 결과물의 노고는 생각도 않고 여기저기 지적질을 한 뒤에 그걸 수정하고 나서야 방송이 나간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야 돈이 나온다. 원고료를 몇 개월의 수고로 나누면 일하는 동안 들어간 카드값도 안된다. 친척은 글로 버는 돈벌이가 빛 좋은 개살구라고 했다. 방송국에 갖다 바친 나의 피와 땀이 들어간 기획안은 버려지는 수많은 제안서 중에 하나로 묻힌다. 주변에 민폐를 끼쳐가며 만든 기획안은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비슷한 형식의 모습으로 방송으로 마주치기도 한다. 설마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이걸 어떻게 방송으로 만드냐고 그네들이 말했던 것 중에 발견되곤 한다. 세상은 다른 사람의 노고를 아주 우습게 아는 버릇이 단단히 들어있다.

겉멋에 일하는 건 이십 대나 할 일이다. 이십 대부터 날밤을 새우고 삼십 대 중반까지 잠을 버리고 일을 했더니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아무리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일이 없을 때 잠을 하루 종일 몰아자면 그래도 견딜 수 있었는데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일을 내려놨다. 여전히 받을 돈은 몇 백만 원 지금으로 환산하면 몇 천만 원은 될 거 같은데 그대로 남아 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수중에 돈은 없다. 통장이 텅 비고 빚은 늘어가니 일을 더 한다. 일은 일을 부르지만 몸이 축나는 만큼의 돈이 남지 않는다.

돈을 받기 위해 돈을 더 얻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는지 뒤통수를 맞은 뒤에야 따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곤 했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당하지 않으려고 버텨도 아줌마 운전자인 나는 가는 정비소마다 세게 뒤통수를 맞곤 했다. 이거 해야 된다, 저거 해야 된다 도대체 차 하나 굴리는데 왜 이리 돈이 많이 나가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귀는 밝아서 소리가 좀 이상하다고 말하면 몇 십만 원부터 백 단위까지 훅 올라간다. 몇 만 원은 지불해 본 적이 없다. 절대 중고차를 살 수 없다. 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싸게 차를 고쳐봤다. 늘 다니던 정비소에서는 안전 검사 직전에 새 걸로 갈아준다고 했다. 몇 십만 원은 기본이라 그러려니 했다. 지인이 몇 번이나 알려준 정비소에 갔다. 사장님이 정말 정직하다고. 바가지 씌우는 일은 없다고 했다. 동네 후미진 곳에 위치한 정비소는 한가했다. 가끔 오랜 단골들이 들락거렸다. 부품을 갈아야 한다더라, 닳아서 안 듣는다더라 했더니 차의 여기저기를 손보시고 나서 바퀴에 달린 이거 때문이라며 다시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아보란다. 어라 여태 듣지 않던 사이드가 깔끔하게 잡힌다. 사장님 솜씨에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게다가 만몇 천 원이라는 말에 눈은 더 커졌다.

정직한 밥벌이는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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