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by 송나영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 고등학교를 입학해 깔깔거리며 세상 근심 없이 살 때였다. 같은 반이었지만 단짝으로 붙어 다닌 것도 아니다. 겨울방학을 맞아 학교에서는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아서 특별 수업을 시켰다. 한겨울 맹추위에 조개탄 난로를 끼고 수업을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내복을 몇 개씩 겹쳐 입고 학교를 갔다.

라면 먹고 갈래? 엥 라면이라니. 우리는 겨울방학에 자율학습이라는 강제학습을 다섯 시까지 했다. 다들 집으로 가기 바빠 교실은 금세 비었다. 얼른 집에 가서 뜨거운 방에 드러눕고 싶은데 친구가 라면을 먹자고 했다. 신이 났다. 친구는 양은냄비에 라면까지 준비해 왔다. 재미없는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하루 종일 공부해서 출출한데 뜨거운 국물의 유혹은 엄청났다. 둘이 라면을 후루룩 먹고는 낄낄거리면서 각자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문과와 이과로 나뉘었고 교실도 층이 갈렸다. 나는 매일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는 나에게 두꺼운 편지를 전해줬다. 답장도 쓰지 않는 주제에 그 편지만큼은 애지중지 여겼다. 몇 년이 흘러 이사를 하고 내대신 짐정리를 하시던 아빠가 다 버렸다는 말에 대성통곡을 할 정도로 오래오래 아꼈다. 다른 친구는 나에게 답장 안 한다고 성질을 냈다. 자기가 받은 편지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딱히 뭐라 쓸 말이 없었다. 사춘기 시절의 소녀 감성이겠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소중히 여긴 건 맞다.

친구네는 산 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과묵한 친구와 달리 친구 어머님은 늘 한바탕 깔깔웃음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친구보다 친구 엄마랑 수다를 더 많이 떨었다. 늘 한결같았던 친구라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후에야 친구는 털어놓았다. 친구 담임은 돈벌레로 유명했다. 친구가 반장이 됐는데 담임은 친구 엄마가 봉투를 들고 오지 않아서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반장 엄마가 인사를 안 해서 섭섭한 거다. 친구네 엄마는 구두 공장에 다니셨다. 문래동에서 철공소를 하셨던 친구아버지의 벌이로는 살림이 빠듯해 엄마가 공장에 나가 구두를 꿰매는 일을 하셨다. 어렵게 돈을 마련해 학교를 가려고 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갈 시간을 놓쳤다. 그걸 말하기 힘들었던 친구는 담임에게 더 미움을 샀고 친구는 아침마다 무릎을 꿇었다는 거다. 일찍 가도 늦게 가도 늘 삼십 분씩 무릎을 꿇고 수업을 했단다. 대입을 치른 후 우리는 마주 앉아 시인 선생 욕을 했다. 아니 나 혼자 흥분해서 갖은 상소리를 했다.

그때 알았다. 친구는 라면을 같이 먹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두 해나 지난 일이다. 얼마나 흥분되고 짜릿한 맛이었는데 고맙다니? 겨울이라 해가 일찍 져서 어둑한 길을 따뜻하게 돌아갈 수 있어서 나도 좋았었다. 우린 다 꺼져가는 조개탄 난로에 라면을 올리고 깔깔 댔었다.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 라면은 특별했다. 모두 돌아간 교실에 둘만 남아 은밀히 먹은 라면이었다. 친구는 차비를 아끼려고 매일 사십 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고 했다. 추운데 걸어가자니 배가 고파서 라면을 싸들고 왔고 나랑 함께 먹어서 좋았다고 했다. 친구네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친구는 나보다 일찍 결혼을 했고, 공무원이 됐다.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하던 나는 뜨문뜨문 연락을 했다. 성실한 친구는 일복이 늘 넘쳐나 바빴다. 사는 동네가 멀어진 만큼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홍제동 언덕배기에 신혼살림을 차릴 때가 마지막 기억이다. 우리가 오래 그리고 길게 떠들었던 시간으로 말이다. 정리할 줄 몰라서 신혼살림을 풀어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느긋한 친구에게 빨리 정리하라고 닦달하면서 밤늦도록 함께 웃고 떠들었다. 친구 아들이 유치원을 가고 학교에 들어가고 서너 해가 지나서야 나는 결혼을 했다. 우리의 만남은 거기서 끝이 났다. 직장 생활하며 살림하느라 바쁜 친구와 결혼과 동시에 바로 학부형이 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연락이 끊겼다. 요즘 부쩍 생각난다. 그립다.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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