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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by 송나영

혼자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한다니까 왜. 아들이 보낸 문자 중에 제일 길었다. 독립한 아들이 바쁘게 지내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연락을 자주 안 한다. 바쁘다는데 굳이 뭐 하냐고, 잘 지내냐고 묻기도 그렇고 잘 지내는 애를 꼬치꼬치 뭐 하냐고 묻는 것도 귀찮을 거 같다. 중간고사 보기 전에 홍삼을 사달라고 왔었다. 바쁘다고 연락도 안 하던 애가 지난번 감기에 홍삼덕을 보았는지 집으로 온단다. 늘 제 친구들 만나러 왔다가 가는 길에 잠시 들르던 애라서 친구랑 약속 있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온 김에 나랑 점심도 먹고 간단다. 한 달 전에 아들에게 홍삼을 사주고 지난 주말에 잠깐 만났다. 사준 스팀다리미가 불편해서 내가 그걸 쓰고 저렴하게 막 쓸 수 있는 다리미로 바꿔주려고 아들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본 아들은 6월에 제주도에 간다고 했다. 학회 따라가는 거라며 제주도 항공권에 대해 얘기했었다. 낮 시간은 모두 매진이고 비싸고 새벽 시간만 남았다고 했다. 아들은 새벽에 김포로 가야겠다고 했다. 지인들은 김포보다 청주가 멀지 않고 시간도 절약된다고 청주를 적극 권했다. 지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청주공항을 권했다. 아들은 청주 공항의 제주행 항공권을 알아보면서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끝내야 했다, 나의 간섭이. 친한 엄마에게 우연히 아들이 제주도에 간다는 말을 했다가 공항버스 타는 것과 주차장 비용 등 여러 얘기가 오갔다. 바빠서 청주 공항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나 혼자 판단해 버린 거다. 아들이 스스로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급발진을 했다. 청주에서 출발하는 제주도행 비행기표 시간을 몇 장 캡처해서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티맵으로 김포공항이랑 청주공항이랑 새벽에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을 알아보고 청주가 낫다고 그리 가라고 나름 청주가 어떻겠냐고 문자를 보냈지만 실상은 청주공항으로 가라는 거였다. 갑자기 날아든 엄마의 참견에 아들은 여태 쓴 적이 없는 가장 긴 문자를 보냈다. 알아서 한다고.

자식이 스스로 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일일이 가르침을 가장한 참견과 간섭을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저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 섭섭하기도 하다. 내 딴에는 여기저기 알아보고 알려줄 때도 있어서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속상해한다. 돌아보면 쓸데없는 간섭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들이 스스로 헤쳐나갈 텐데 그걸 기다려주지 못한 거다.

아들이 고등학교까지 다닐 때까지 우리 동네 우상인 엄마가 있었다. 애들을 학원도 잘 안 보내는데 둘 다 전교 1등으로 키웠다. 다른 엄마들은 비결을 알아보려고 그 집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딸 둘 다 모두 우수한 성적을 자랑했고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둘째 딸이 우리 애랑 같은 반 친구라 종종 함께 학교행사에 참여할 때가 있었다. 큰 애한테 전화를 받은 그 엄마는 할 일이 많은데 네가 노냐고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제 놀았으면 됐지 오늘까지 놀면 되겠냐고 딸아이에게 우는 소리를 했다. 그 딸은 바로 전날까지 중간고사를 치렀다. 하루 충분히 놀았기 때문에 딸은 더 이상 놀 수 없었다.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았다. 그때 나는 그 엄마가 애들에게 얼마나 많이 시키는지 알게 됐다. 학원을 안 보내지만 학원 숙제보다 많은 양의 숙제가 매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딸들은 매일 글쓰기와 영어로 에세이 쓰기에다 EBS 영어강좌 듣기까지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새벽 두 시 전에 잘 수가 없다고 들었다. 큰 애가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받은 영어교재를 한 권도 빠짐없이 모아서 둘째를 가르쳤다. 학원에 맡기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챙겨보지 않던 나에게 그 엄마는 학원에서 틀린 문제 오답을 안 해준다고 학원선생에게 문제지와 답지를 달라고 해서 따로 집에서 복습을 시킨다고 했다.

아들이 수학학원을 옮겼다고 하자 어디 다니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평상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의아했다. 굳이 대치동까지 다닐 필요가 있겠냐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알려주기가 싫었다. 동네의 유명한 대형학원은 선행을 해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우리 애는 수학 선행을 안 해서 거만한 상담선생의 들어갈 반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수학을 좋아했던 아들을 위해 나는 동네에 적당한 학원이 없어서 멀리 다니는 거였지만 그런 얘기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엄마는 우리 애가 다니는 수학학원을 알아내기 위해 자기가 알고 있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어디 수학학원을 다니는지 알려줬다. 누구는 무슨 학원 어디 레벨이며 또 누구는 어떻게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려줬다. 소름이 끼쳤다. 그건 알아서 뭐 하려는지 다른 애들의 수학학원 레벨까지 소상하게 꿰차고 아는지 말이다. 그 집 딸들은 수학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엄마가 가르쳤다. 다른 애들과 수준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동네 대형 수학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봤다. 자기 애들의 수준이 떨어질까 봐 늘 학원테스트로 검증을 한 거였다. 그날 이후 다시는 그 엄마와 만나지 않았다.

그 딸들은 착했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엄마한테 학교가 끝났다는 전화를 했다. 딸들이 밖에 돌아다니며 노는 일은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철저히 관리하는 딸들은 오직 엄마랑 집에서 함께 공부를 할 뿐이었다. 아는 엄마는 그런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올까 봐 겁이 난다고 했다. 그저 그 엄마랑 멀리 할 생각만 했던 나는 그 생각까지 못했지만 일리가 있었다. 아들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친정에 전화해서 어떻게 하냐고 일일이 물어볼 거 아니냐고 했다. 내가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생각도 못 했던 거였다. 냉정한 엄마 밑에 자라서 엄마한테 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엄마한테 얘기했다가 몇 번의 타박을 들은 후에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엄마의 고민을 들어야 했고 엄마의 투덜거림에 내가 더 어른으로 서있어야 했었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우리 집 딸은 둘 다 엄마한테 뭘 해달라는 소리를 안 했다. 독립적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배운 대로 키울 뿐이다. 나도 아들한테 살갑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잘 안된다. 살갑게 자식한테 말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타박하고 비난하는 말을 듣고 자라서 나도 모르게 엄마의 말투가 배어 나오곤 한다. 엄마는 내 아들이 누굴 닮아 저렇게 살갑냐고 했다. 무뚝뚝한 나와 달리 아들은 곰살맞은 데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를 꼭 빼닮은 모습으로 아들을 혼내고 지적했던 사춘기 시절에 아들은 무뚝뚝하고 쌀쌀맞게 변했었다. 떨어져 지내는 요즘 아들을 가끔 만나면 다정하고 따뜻한 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가 무얼 하는지 엄마가 참견할까 봐 입을 다물었었는데 지금은 묻지 않아도 뭐 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냥 듣고만 있다. 사랑과 간섭은 한 끗 차이다. 너그럽고 푸근하게 자식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아들의 일상에 주도권을 쥐려고 하면 간섭이 되고 만다. 분명히 독립해서 나갈 때 네가 알아서 잘하라고 엄마 자주 안 간다고 시원스레 말했지만 가끔 미치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믿음이 아들을 키울 거다.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 믿을 때 나는 연락할 마음이 안 생긴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괜히 아들을 들볶곤 한다. 말 그대로 쓸데없다. 느닷없이 호들갑을 떨어서 알아서 하는데 왜 그러냐는 문자를 받았다. 사이 나쁜 부모 밑에서 불편하고 편치 않은 사춘기를 겪었던 아이가 잘 살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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