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혼낼 일이 아니다. 요즘 모바일게임에 빠져서 틈만 나면 손전화를 붙들고 있다. 몇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는 건 예삿일이다. 내가 왜 이걸 이렇게 붙들고 씨름을 하는지 한심하다가도 딱 이 판만 끝내볼까라는 승부욕에 불타곤 한다.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게임하는 걸 참 많이 말렸다. 그것 때문에 잔소리를 폭풍으로 퍼붓곤 했다. 주말만 하라고 했는데 내가 일하러 나가는 사이에 혼자 심심하게 집을 지키던 아이는 게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을 거다. 어느 날은 나갔다가 뭘 잊고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곧바로 들어왔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고 혼비백산한 아이는 너무 당황해서 게임을 끄지도 못했다. 엄마들의 흔한 잔소리가 이어졌다. 여태 엄마를 속였냐? 내가 나가면 매일 게임한 거냐? 실망이 크다면서 쉬지 않고 애를 다그쳤었다.
게임을 그만둔 적도 있다. 내가 보는 한 관둔 거였지만 실상은 나도 모를 일이다. 아이가 집에 혼자 있으니 애 아빠는 돈을 챙겨줬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애아빠는 자기 나름대로 아이를 위해 한 일이었지만 오십만 원의 비상금은 단위가 너무 컸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 만 원 정도여도 충분했는데 말이다. 그 당시에 우리 부부는 말을 끊은 상태라 나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아이랑 자주 어울리던 같은 학교 아이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자기 아이가 우리 집에서 돈을 훔쳤다는 것이다. 그것도 놀라운데 우리 애랑 게임을 하면서 게임머니를 우리 애가 냈다는 것이다. 한 달이 넘도록 게임머니를 충전하는 것을 그 집 엄마는 메일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나한테 혼날까 봐 그 아이 엄마 메일을 이용해서 게임머니를 충전했었나 보다. 머리가 멍했다. 도대체 왜 이제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애한테 아줌마가 너네 엄마한테 말한다고 경고를 했었다고 했다. 나한테 직접 얘기를 했어야지 36만 원이나 게임에 쓰는 동안 지켜보다가 자기 아들이 돈을 훔치는 지경이 되니까 연락한 건 또 무슨 경우인지 도무지 혼란스러웠다.
기가 막혔다. 아들의 의리는 게임머니를 통해 정확히 보였다. 자기가 삼만 원을 충전하면 친구도 똑같이 해줬던 거다. 단 한 번도 자기보다 적은 액수로는 한 적이 없었다. 그 엄마는 게임머니가 어떻게 충전됐는지 보여주려고 인쇄한 종이를 들고 왔다. 기가 찼다. 10번이 다 돼 가도록 자기 아들이 돈을 쓰지 않았기에 말로만 경고를 한 건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는 나보고 자기 아들을 혼내달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갈수록 태산이었다. 자기 아들은 자기가 가르쳐야지 왜 그걸 나보고 하라는 건지 정신이 아득했다. 나는 그 아이보다 우리 애를 혼냈다.
그 아이가 돈을 훔치는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물어봤다. 그 아이는 우리 애가 비상금 봉투에서 매번 오만 원짜리를 꺼냈다고 했다. 그 봉투에 오만 원짜리가 많다고 했다. 오만 원짜리 두 장을 들고 가서 문화상품권을 자기 거랑 그 아이 거를 샀다고 했다.
그 아이가 돈을 훔친 것보다 내 아이가 오십만 원이나 되는 돈을 한 달에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경악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돈 가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텐데 아이 비상금으로 이렇게나 많은 돈을 두고 다니는, 이렇게 정신없는 아비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아이를 혼을 내야 할지 정신이 아득했다. 그 아이에게 너한테 돈을 꺼내서 보여 준 우리 애가 잘못이 크다며 아이와 엄마를 돌려보냈다. 돈을 훔친 아이보다 끝까지 자기 아들을 혼내주길 원하는 그 엄마가 더 괘씸하고 미웠다. 그 엄마는 자기 아들이 한 행동을 주변에 말하지 말아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들은 게임을 그만두었다.
아이를 혼내다가 같이 붙들고 울었다. 아들 혼자 집을 보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한테 전화를 하고 저녁 8시가 다 돼야 들어오는 나를 기다려야 했었다. 왜 나는 그때 아이를 돌봐주는 아줌마를 찾지 못했을까 돌아보면 내가 어리석었다. 남의 아이 가르치러 다니는 일에 바빠서 내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 어른도 혼자 지내면 외로운데 많은 시간을 어떻게 혼자 보내냐고 학원에 가자고 아이를 설득했다.
소심한 아이는 새로운 환경을 겁을 냈다. 특공무술을 다니자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매일 가는 거라 나는 안심될 듯했다. 아이는 테니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테니스를 알아봤더니 교육비가 25만 원이나 했고 일주일에 두 번이었나 한 번이었다. 그걸로 시간을 채울 수가 없었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특공무술 학원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아이들이 많았다. 가기 싫다는 아이를 딱 한 번만 구경이라도 해보자고 꼬셔서 갔다. 아이는 그 안을 들여다보다가 친구를 만났다. 드디어 특공무술을 다니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영어독서클럽이라는 학원을 보냈다. 매일 가는 거라서 내가 안심할 수 있었다. 아이의 시간을 방과 후부터 저녁 8시까지 학원으로 채웠다. 아이는 고된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저녁 8시에 아이를 만나서 우리는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었다.
인생은 되감기도 안 되고 다시 시작도 안 된다. 무엇이든 처음이다 보니 서툴고 어설프다. 성급한 내 성미는 실패도 잦고 후회할 일도 많이 생긴다. 아들이 어둑한 방에서 혼자 기다렸을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부모가 집에 없었던 나도 외로웠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는 것을 주저했고 시간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일거리를 찾았는데 내 아이한테도 똑같은 시간을 보내게 한 거다.
아들은 나 모르게 게임하던 시간을 지나 사춘기를 지내며 지독하게 게임을 했다. 차라리 게임을 미친 듯이 해보라고 피시방에서 쓸 사양에 맞춰 컴퓨터를 새로 사줬다. 아들은 친구랑 같이 조립을 했다. 밤새도록 게임을 했다. 게임에 지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거에 지쳤다.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게임하는 아들한테 밥을 가져다줬다.
더 이상 할 게임이 없다면서도 끊임없이 게임을 하던 아들은 요즘 못한다. 학교 공부가 바빠서 어쩌다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하는 거 같다. 오히려 내가 게임을 한다. 별 것도 아닌 물건 정리하는 게임에 폭 빠져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붙들고 있다. 나야말로 정신없이 빠져서 할 거리를 더 늘려야겠다. 게임 말고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야겠다. 설거지 알바라도 다녀야 정신을 차릴는지 모르겠다. 아직 시간이 많은가 보다.
며칠 전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에 전철에서 만난 어느 영감님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머리가 허연 영감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모바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주변에 오가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