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쳇바퀴 돌듯 살았다. 물가를 느낄 새가 없었다. 이십 대 후반에 서울을 벗어나 신도시로 왔다. 거기서도 물가에 둔감했다. 결혼을 하고 소도시로 살던 곳을 옮겼다. 식구들 먹거리를 사려고 장을 보면서 물가를 느꼈다. 좀 더 싼 데를 찾아다녔다. 도매로 준다는 곳을 갔더니 양이 엄청 많았다. 마트 돌기를 성지순례하듯 했다. 싼 마트를 찾아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기름값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동네 아는 형님이 마트에서 세일을 한대서 친한 언니랑 신나게 장바구니를 챙겨 갔다. 둘 다 물건 제대로 못 고르고 비싸게 사는 게 쿵짝이 맞는데 여지없이 우리는 할인이 안 되는 물건만 카트에 가득 담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서 영수증을 확인하니 50프로나 할인한대서 왔는데 평소보다 더 비싼 가격에 질겁을 했다. 싼 줄 알고 담았는데 할인만 피해 간 거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둘 다 할인되는 건 한 개도 못 골랐다. 알뜰살뜰은커녕 차라리 마트를 안 가야 절약이 된다.
남보다 비싸게 사는 건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다. 물건값을 잘 못 깎는 나는 소심하게 몇천 원, 몇백 원 깎다가 같이 간 사람에게 입 좀 다물라는 말을 들었다. 좀 깎아보려 해도 내가 먼저 말하는 바람에 비싸게 산다는 거였다. 흥정을 잘 못한다. 다행히도 아들은 엄마랑 거래를 많이 해서인지 흥정을 참 잘한다. 아들이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뭐 사달라고 하면 일단 먼저 사주고 약속을 지키길 기다린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빈말이 되곤 했다.
밭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지인의 아버님께 여쭈지도 않고 대뜸 모종부터 샀었다. 왜 벌써 샀냐는 말을 들었다. 밭에다 모종을 잔뜩 부리면서 지인과 지인아버님은 나머지 공간에 무얼 심을지 계획을 세웠다. 작년에 심었던 바짝 말라비틀어진 고추며 토마토를 뽑고 밭을 일궈 놓으니 텃밭이 세 배나 넓어졌다. 거기 심을 작물을 사러 밭 근처 스마트농협이란 곳을 갔다. 세상에나! 성질 급한 내가 샀던 모종이 스마트농협에 있는 모종보다 가격이 거의 세 배는 되는 거 같았다. 모종도 훨씬 싱싱해 보였다. 모종 한 판을 사도 가격이 헐했다. 우리는 버터헤드랑 토마토 모종을 더 샀다.
밭 주변은 고가도로를 경계로 한 편은 새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반대편은 구도심으로 예전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밭 앞쪽은 가게가 한 이 백 미터 간격으로 드문드문 있고 주로 밭이 펼쳐져 있다.
나는 쪼그려 앉아하는 일을 잘 못한다. 상추를 따다가 십 분도 안 돼 벌떡 일어난다. 지인은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앉아하는 일을 잘했다. 오히려 들락날락하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쪼그려 앉아 상추를 따다가 땀을 좔좔 흘려서 후다닥 달려가 커피를 사다 날랐다. 고가도로 아래를 건너가면 새로 지어진 건물 모퉁이에서 커피를 판다. 메가 커피도 아니고 백다방도 아니고 동네 커피가게다. 여기도 무슨 체인이라는데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키오스크로 아이스커피 두 잔을 신청했다가 깜짝 놀랐다. 이천 원에 커피를 한 사발을 준다. 메가커피 컵보다 더 큰 용기에 담아줬다. 게다가 마시는 입구에 빨간색 꼭지를 끼워줘서 가져오는 동안에 한 방울도 차에 흘리지 않았다. 탄 내 잔뜩 나는 스타벅스 커피보다 맛있다. 스타벅스의 벤티랑 트렌타 그 중간쯤 되는 거 같다. 하루 종일 오가며 마셨으니까.
며칠 만에 훌쩍 자란 상추랑 겨자잎이랑 국화 화분만큼 자라난 쑥갓을 잔뜩 따고 뿌듯한 마음에 근처 하나로 마트에 갔다. 동네 하나로마트라 뭐 별거 있겠냐는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들어갔는데 그게 아니다. 동탄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고 수원에서도 가까운 화성에 있는 하나로마트는 또 별세상이다. 일인분용 삼겹살을 팔았다. 지인은 이 동네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고 했다. 지인은 일 인분 삼겹살에 감탄을 했다. 긴 삼겹살 한 줄을 반으로 잘랐다. 옆에 계신 할머니가 저거 좋단다. 아들이 저녁에 혼자 구워 먹는단다. 고기도 우리 동네 하나로 마트보다 훨씬 질이 좋아 보인다. 종류별로 다양하게 담겨 있어서 고를 맛이 난다. 지인은 목살을 골랐고 나는 얇게 썬 볶음용 목살 500그램을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생선 코너도 훌륭했다. 지인이 알려준 광주식자재마트에 가끔 갔었는데 그곳 수산물도 싸고 좋았지만 거기에 댈 게 아니다. 광주 식자재마트에서 팔던 물회는 양배추 잔뜩에 광어 나부랭이랑 뭐 날치알 같은 시원찮은 거 몇 개 더 넣고 만원에 팔았다. 그것도 싸다고 샀는데 여기는 만오천 원에 전복, 성게알, 회까지 푸짐하게 양동이처럼 커다란 일회용 그릇에 담아 판다. 동네마다 이렇게 물가가 다른지 새삼 느꼈다. 돌아다닐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상추와 겨자잎을 잔뜩 땄으니 고기 한 팩을 사들고 나오는데 계산대 옆에 꽃이 눈에 띈다. 동네 꽃가게는 너무 비싸서 가끔 양재동에 꽃을 사러 갔었다. 작년부터 꽃값이 너무 올라서 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사고 싶은 꽃 몇 개 집으면 삼만 원이 훌쩍 넘고는 했었다. 양재동 꽃도매 시장에서 싼 꽃을 찾아 뱅뱅 돌곤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파는 꽃은 세 종류뿐이지만 꽃 한 다발이 풍성하고 가격도 너무 쌌다. 근처 농가에서 납품하는 거란다. 누가 키웠는지 농부 이름의 팻말도 붙어 있다. 그동안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면서 꽃 보고 싶은 마음을 대신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던 꽃을 마음껏 샀다. 횡재를 했다. 세 다발의 꽃을 사들고 집에 가서 꽂을 생각을 하니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신이 난다. 멋을 부릴 필요도 없고 화병에 확 꽂아놓는다. 그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노란색 버터플라이라는 꽃이 집안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꽃 보고 싶은 소원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