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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도대체 왜 노인들은 건널목 앞에만 오면 전투력이 상승하는지 모르겠다. 한두 번이 아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깜박거리면 저 멀리에서 노인들이 뛰어온다. 다리에 힘도 없는데 휘청거리며 신호가 바뀌어가는 건널목에서 마라톤을 한다. 참 희한한 일이다.

집 근처에 6차선 도로가 있다. 마트에서 문화교실 수업이 끝나고 할머니들이 거리로 나오셨다. 신호가 바뀌어가는데 할머니 대여섯 분이 손을 잡고는 그 신호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뛰어들었다.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한 명이 넘어지면 다 같이 넘어질 텐데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뭔 일이 생기나? 왜 그러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숫자가 줄어드는데 얼마 남지 않은 그 신호를 거르지 않는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노인을 본 적이 없다. 걸음도 느린데 늦게 건너니 차들은 다들 기다린다. 심지어는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벌벌 떨리는 몸으로 무조건 직진이라는 듯 그냥 건너는 할머니도 봤다. 왜 그러는 걸까? 왜 저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저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죽음을 각오하는 걸까? 살아온 날보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데 말이다. 신호만 보면 달려드는 노인들을 자주 만나니까 더 궁금하다. 젊은이나 아이들은 오히려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지인이 송도에 갔다가 왕복 8차선 도로를 보고 늙어서는 꼭 도로 폭이 좁은 곳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단다. 건널목이 너무 길어서 푸른 신호 안에 노인은 그 길을 건널 수 없을 거 같더란다. 그네는 늙으신 친정 부모를 돌보느라 일주일이 바쁘다. 어머님과 병원을 같이 다니고 내년에 구순이신 아버님의 일을 도와드리곤 한다. 그래서인지 노인이 되면 어떻게 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종종 세우곤 한다. 그이는 구순이신 아버님의 열정 때문에 자주 다툰다. 팔순이 훨씬 넘어서까지 운전을 하셨던 아버님은 지금도 자식들이 운전하지 말라고 말린 게 못마땅한가 보았다. 길눈이 무척 밝으신 아버님은 아직도 젊어서처럼 운전을 잘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자식들은 점점 잦아지는 아버님의 교통사고를 막으려고 더 이상 운전하지 마시라고 말렸었다. 팔순이 넘어서도 아직까지 운전을 계속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들은 몇십 년의 운전경력을 자랑하기에 팔다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밖에 없는 음식점에서 내 언성은 점점 높아졌었다. 팔순이 넘은 엄마에게 운전 그만하시라고 했더니 오히려 새 차를 사겠단다. 내가 70 넘으면 운전대 내려놓겠다고 했더니 죽어서라도 네가 그렇게 하는지 확인하시겠단다. 엄마는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무릎 아파서 걷기도 힘든데 왜 운전을 그만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는 분이 중형차에서 경차로 바꾸니까 병원 다니고 주차하기 수월하다고 했다며 차를 경차로 바꾸시겠단다. 운전 그만하라고 말리다 싸움이 됐었다. 엄마는 주변 할머니들 칭찬에 당신은 운전을 아주 잘하는 줄 안다. 나는 엄마차를 타지 않았다. 액셀을 심하게 밟거나 너무 늦게 브레이크를 밟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반응속도도 느린데 속도를 즐기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액셀 좀 밟던 습관만 살아있다. 게다가 동네 할머니들의 기사를 자처하며 할머니들을 모시고 음식점을 찾아다니신다. 오랜 경력으로 한두 시간의 운전을 우습게 여긴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절에 다니시는 엄마는 꽉 막힌 그 길에서 졸다가 앞 차를 박은 후 그다음부터는 한숨 자고 나서 운전하는 습관이 생겼다. 집 동네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는데 동생과 나한테 한소리 듣는 게 싫어서 한참 지난 뒤에야 말을 했었다. 결국 엄마는 경차로 바꿨다. 나이 들수록 욕심을 내려놓기가 참 힘이 드나 보다.

이웃인 어느 할머니가 팔십이 넘어서 차를 바꾸려다가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냐 싶어서 차를 팔고 대중교통을 타셨다고 들었다. 나이에 맞게 사는 모습은 아름답다. 젊어 보이려고 억지로 꾸미거나 피부과 시술로 터질 듯이 부어있는 모습도 꼴사납다.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걸 인정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게 힘이 드는가 보다. 예전에 엄마한테 발음 틀리다고 자꾸 지적했는데 나이 오십 넘으니 내가 그렇다. 말도 느려지고 헛말도 자꾸 튀어나와서 말조심을 하게 된다. 식탐은 여전히 줄지 않아 허겁지겁 퍼먹다가 줄줄 흘리곤 한다. 밥 먹는 내내 휴지로 지저분해진 입 닦기 바쁘다. 경험으로 알게 된 내 지식이 다 인 양 우기는 것도 참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다. 힘이 들면 천천히 하면 된다. 느린 만큼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사는 동안 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나이 듦을 천천히 즐기면 좋지 않을까? 나이 들수록 잘 사는 건 힘든 일인가? 김장하 어른의 모습이 그래서 더 어른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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