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입식 교육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교육자가 됐으니 창의성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공부를 잘하려면 주입식 교육에 최적화 돼 있어야 한다. 가르쳐 준 대로 외우고 답하면 된다. 그게 왜 그런지 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묻는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고 따라갈 수가 없다. 엉뚱하다고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이다.
내가 고등1학년 때 동생은 중학교 1학년이었고 나에게 방정식에 대해 물어봤었다. 나는 방정식은 이렇게 푸는 거라고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동생은 "그렇게 푸는 건 알겠다고 근데 X가 뭔데?"라고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미지수라고 미지수."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왜 X라는 걸 찾아야 하냐고 답답해했다. 나는 왜 X가 궁금한지 그게 더 이해가 안 됐다. 그때까지 나는 X에 대해 한 치의 의구심이 없었다. 그냥 푸는 거니까.
아들이 수학에 흥미가 많았다. 사고력수학 학원을 다니며 아들은 재미있어했다. 아들은 학원에서 나오는 교재를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걸 보고 또 보면서 혼자 생각하곤 했다. 초등 때는 자긴 게임 프로그래머가 될 거라고 자기 인생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니 중학교에 가면서 아들은 수학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다고 했다.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입식으로 무조건 문제만 많이 풀리는 학원 말고는 없었다. 수학 개념에 대해 생각하는 수업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학원은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이 문제를 풀고 검사만 해주는 곳도 있었다. 마땅한 곳을 찾다가 대치동으로 갔다. 수업 시간이 두 배로 늘었다. 물론 숙제양도 많았다. 학원에 가기 전에는 뚱해서 부어있던 아이가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 얼굴이 밝아졌다. 학원 다니기 싫은 게 아니냐고 그럼 동네 학원으로 갈까라고 물어보면 아이는 그래도 여기가 수업이 맛깔나다고 했다. 풀이 방법도 다양했고 아이의 질문이 수준에 맞지 않게 높아도 무시하지 않고 차근히 설명을 해주곤 했다. 삼 년을 다니다가 아이는 이제 그만 다니면 안 되냐고 했다. 많이도 했고 그동안 힘들게 다니기도 했었기에 그러자고 했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 수학에 흥미를 잃었다. 몇 년이 흐르고 나서야 아들은 어느 순간 수학에 재미를 잃게 되더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재미를 느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숙제가 많아졌고 빨리 풀어야 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도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에 재미가 좀 생기면서 학교에서 알려준 대로 과학, 수학 문제를 풀지 않았다. 나 혼자 이런저런 방법으로 풀었다. 답을 찾아가는 맛이 있었다. 근데 그 맛을 잃은 거였다.
대학 졸업반인 아이가 얼마 전에 자기는 매년 수능 문제를 푼다고 했다. 머리가 꽉 막혔거나 스트레스받으면 수능 문제를 푼단다. 만약 내가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문제 풀이 방식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이곳을 떠났으면 아이는 수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을까?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 말고 수학을 갖고 놀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학원에 안 보내고 혼자 하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았을까? 아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못 해준 거 같아 마음이 짠했다.
지인의 조카는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 매번 혼났다. 엄마는 계속 불려 갔다. 아이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왜라는 질문이 너무 많았다. 아이는 왜 그런지 너무 궁금했지만 혼만 났다. 결국 엄마는 미국행을 택했다. 아이는 왜라는 질문이 많았던 만큼 호기심도 왕성한 아이여서 마음껏 질문하고 공부하는 환경에서 배울 수 있었다. 바보, 멍청이로 취급받았던 아이는 스탠퍼드에 입학했다.
우리는 주제가 하나인 문학을 배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읽고 한 가지 주제를 맞추는 문제를 푼다. 달리 생각하면 안 되는 거다.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도 한 가지뿐이다. 시에 적혀있는 말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나의 경험과 나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건 국어교과서에서 벗어난 일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작가가 전달하는 의도를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건 오답일 뿐이다. 주제가 하나뿐인 말도 안 되는 문학이다.
창의성이 넘치는 아이일수록 성적은 아래로 향한다. 생각을 할수록 가슴으로 느낄수록 오답은 넘쳐난다.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듣기 힘들다. 남과 다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실이 아니다. 엉뚱하고 남들과 달리 생각하는 창의성이 뛰어난 아이들이 점점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쭈그러진 성적에 기가 죽고 남들보다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이해를 못 하는 게 아니다. 이해를 못 받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창의성 있는 인재를 원한다. 그리고 창의성 교육을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