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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돈 걱정하고 살 때가 제일 행복한 거야."

십여 년 전에 어느 할머니가 그러셨다.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돈 때문에 고민도 많았을 때였다. 할머님 말씀은 살다 보면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엄마들 모임에서 자식 자랑과 남편 자랑에 침을 튀기던 일이 줄어든단다. 의사 아들과 의사 며느리 자랑에 손주 데리고 나와서 매번 자랑하던 할머니가 어느 날 얼굴이 반쪽이 돼 나타났다고 했다. 알고 보니 손주가 자기 혈육이 아니란다. 자랑스러운 의사 며느리는 남이 되었다고 들었다. 드라마 소재는 주변에 차고 넘친다. 드라마로 못 옮길 정도다.

그 할머님은 또 돈은 눈이 정말 밝아서 자기를 잘 알아주는 사람한테 간다고 했다. 그 할머니 말씀이 간간이 떠오른다. 정말 돈은 눈이 밝은 거 같다. 아무한테나 안 간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혹 해서 당하는 일이 왕왕 생긴다. 기획부동산 직원과 친해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자주 전화하던 그 사람에게 선을 그었다. 땅에 관심도 없고 살 돈도 없으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전화를 했고 친해졌다. 지금은 헤어진 남편이 돈 벌기 싫다고 투덜대면서 그 사람한테 좋은 건 있으면 추진해 보라고 했었다. 여기저기 나오는 땅을 소개하던 그 남자는 이번에는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서울공항 앞에 좋은 매물이 있다고 이걸 사란다. 서울공항 앞이라니 혹했다. 여럿이 함께 사는 땅은 항상 나중에 팔지도 못 해서 애물단지가 되길래 안 하려고 했더니 아니란다. 개인 매매가 가능한 매물이라고 사장을 소개해 줄 테니 들어보라고 했다. 사장을 만났지만 내가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고 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땅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 제대로 들리겠는가? 전문가 앞에서 나는 천둥벌거숭이일 뿐이다. 네네 대답만 하다가 끝이 났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은 많았지만 나중에 큰돈을 벌 거라는 기대감에 일을 벌였다. 같이 투자했던 남편 친구의 아내는 공인중개사인 언니한테 물어보고도 그 땅을 샀다. 나중에 보니 역시 혼자 팔 수 없는 땅이었다. 그 땅의 임자들을 보니 부동산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다. 땅을 팔고는 그 기획부동산은 어느 사이에 사라졌고 고소를 당해서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삼 년이 넘도록 나한테 전화를 하고 우리 집에 놀러 왔던 그 부동산 직원도 자취를 감췄다.

어제 20대에 짠순이로 살면서 2억 6천을 모으고 집을 샀다는 영상을 봤다. 알뜰살뜰하게 살아온 그네 인생이 짠했다. 어려서 겪은 지독한 가난으로 부모님이 늘 싸웠고 그걸 이기지 못한 언니는 삶을 내려놨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가 최저시급의 월급을 받으며 버텼다. 월급인상에서 늘 열외였다고 했다. 그네는 살기 위해 모았을 거다. 가난이 가르쳐 준 거다. 나는 어려서 유복하게 산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껴 쓰는 건 잘 못 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한동안 어려웠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내가 쓸 돈은 늘 여유가 좀 있었다. 사업을 접은 남편이 생활비를 안 주면서 힘들었었다. 패물도 팔고 은수저도 팔았다. 아껴 쓰려고 동동 거리면서 아이한테 화를 냈었다. 오 원 십 원 아낀다고 혼자 애를 끓이다가 오히려 큰 목돈이 나갈 일이 생기곤 했다. 아끼면 아낄수록 돈이 느는 게 아니라 교통사고가 나든지 엉뚱한 데서 돈이 줄줄 샜다. 아끼고 산다고 식구들만 잡다가 감정만 상하는 일도 잦았다. 돈 아까워하다가 큰돈 나가는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마음을 바꿨다. 내 주변머리로는 쓸 데 쓰고 차라리 돈 버는 일에 열중하는 게 더 나았다.

돈을 잘 부리는 일은 쉽지 않다. 돈에 욕심을 내고 갑자기 투자한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정보에 홀려서 돈을 잃는 경우도 많다. 깐깐한 내 친구가 느닷없이 주식리딩방에서 알려준 회사에 투자해서 천만 원을 잃었다. 짠돌이 남편 몰래 돈을 불려보겠다고 애써 모은 돈이었다. 절대 그럴 애가 아닌데 돈이 급하다 보니 홀린 거다. 나도 주식투자로 번 거보다 잃은 게 더 많다. 요즘에는 아예 주식창을 열어보지 않는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쳐다보면 나의 무모함에 한숨만 나온다. 내 욕심에 벌인 일이다. 내가 이승의 소풍을 끝내고 가는 날 동전 하나 들고 갈 수 없으니 갈 때까지 알뜰하게 잘 쓰다 갈 일이다.

돈 모으는 재미로 사는 분이 계셨다. 고아나 다름없이 기댈 언덕이 없으셨던 그분은 억척스럽게 살았다. 한평생 직장을 성실히 다녔고 노후에는 국가유공자로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약을 드시기 위해 바쁜 딸들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딸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 말고 약을 타러 가야 하는 일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다달이 임대수입에 연금에 노후에 넉넉한 수입이 있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공짜에 집착했다. 건강을 잃으면서 기억을 잃었다. 숫자만 잊었다. 돈에 집착했던 그분은 숫자를 기억할 수도 없었고 판단하는데 어려워졌다. 돈을 셀 수가 없었다. 한 푼도 못 쥐고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그분은 돌아가셨다.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하고 싶은 거, 누리고 싶은 거, 즐기고 싶은 거 나답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벌이다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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