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미친 듯이 빠른 개발 속도가 무섭다. 내 기억은 8비트에서 시작했고 286만 해도 어마어마한 거였는데 어느새 486, 586을 넘어선 지가 오래다.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대학을 들어가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다. 그 당시에는 랩실에서 VAX라는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본체에 모니터를 줄줄이 선을 이어서 썼다. 퍼스널컴퓨터는 생각도 못할 시기다. 정말 부자였던 친구들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학교에서 컴퓨터를 접했을 거다. 전축이 귀중한 물건이었고 비디오가 있는 집도 드물었었다. 애플의 8비트 컴퓨터가 나왔지만 너무 비쌌다. 컴퓨터라는 요물은 어디에 무슨 소용이 있는지도 모를 물건이라 생소하고 막연했었다.
포트란을 배우는 컴퓨터 수업 시간이 교양 필수과목이라 듣기는 했지만 지독히 끔찍했다. 한 시간 내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박음질, 수놓기 심지어 치마, 블라우스까지 만들던 중, 고등학교 내내 나는 가정과 가사만 배웠다. 밥 하는 법과 나박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어슷썰기, 깍둑썰기가 중요했던 시절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비빔밥을 먹는다는 걸 시험 봤던 난데 난데없이 컴퓨터가 내 인생에 등장했다. 기술, 공업을 배우는 남자아이들은 그래도 뭘 알아듣는 모양인데 기계치인 나는 혼자 안드로메다에 착륙한 거 같았다. 수업 시간 내내 빙빙 겉돌았다. 유독 컴퓨터를 잘하는 동기가 있어서 나는 그 옆에 착 달라붙어 시험을 쳤다.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수학 시간에 배운 순서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두 번의 시험을 전부 커닝으로 무사히 넘겼던 것 같다. 난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랩실에서 시커먼 화면에 dir만 치고 있었다. 그러면 무슨 파일들이 담겨있는지 줄줄이 화면에 따라 올라갔다. 그러면 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혼자만 느꼈다. 정말 한심했던 컴퓨터랩 시간이었다.
당시는 명령어를 쳐야 컴퓨터가 수행을 했다. 애플 맥킨토시 컴퓨터의 혁명적인 화면을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랑 베껴서 윈도우를 만들기 전까지 암흑의 바다에서 명령어를 알아야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 오퍼레이팅 시스템 중에서 맥이나 윈도우 이전에 다른 것들도 몇 개 써봤지만 살아남은 건 맥이랑 윈도우 운영체계다. 글을 써보겠다고 작가교육원이란 곳을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 컴퓨터를 빌려서 썼다. 그러다 90년도에 거금 200만 원을 들여서 286 컴퓨터를 용산에서 샀다. 몇 달 월급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컴퓨터에 무식한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당당히 용산에 있는 컴퓨터 가게 중에서 아무 데나 들어가서 한글만 쓰면 되는 컴퓨터를 맞춰달라고 했다. 당시 고사양이었던 그 컴퓨터로 난 한글 작업과 카드게임만 했다. 둠이라는 게임도 깔아줬지만 할 줄도 모르니 무용지물이었다. 제일 싸구려 컴퓨터를 썼어도 충분했는데 말이다.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일을 했고 천리안이라는 PC 통신 서비스가 있었는데 속도가 느려서 팩스로 원고를 보냈다. 그게 불과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팩스는 e메일로 바뀌었고 사무실에서 지금의 카톡 같은 기능을 했던 메신저라는 걸 이용해서 몰래 수다를 떨었다. 업무가 끝난 저녁에 다들 집에도 안 가고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며 술내기를 하곤 했었다. 삐삐를 이용해 사랑의 문자를 보냈고 PCS 휴대전화를 거쳐 손안에 쏙 들어오는 폰에 감격했었다. 어느덧 손에 컴퓨터를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 시대가 왔고 별별 걸 다 하는 앱들이 넘쳐났다.
한때 CD-ROM을 만드는 회사에 다녔었는데 그 CD-ROM이 웹이 되고 이제는 앱으로 살아 움직이는 문화콘텐츠가 되어 온 세상에 퍼져간다. 그 당시 문화콘텐츠라는 말을 처음 쓴 어떤 사장은 곧 문화콘텐츠가 대세가 될 거라고 흥분하며 나를 가르쳤었다. 문화콘텐츠는 이제 AI가 만들어주는 시대가 됐다. 창의력이 세상을 지배할 거라고 온 세상이 창의력 교육을 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AI가 보여주는 세상은 별천지다. 챗GPT에 어쩌다 한 두 번 물어보고 요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젠 그걸 이용해서 노래도 만든다.
포트란에서 C언어로 바뀌며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소고기도 아닌데 C 투뿔 프로그램도 알아야 코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코딩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쉬운 프로그램으로 변해갔다. 코딩은 막노동 현장에서 AI가 알아서 다 하는 손 안 대고 코푸는 현실이 됐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보수는 짜고 일이 많아서 코딩할 사람이 없을 거라며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늙어서 코딩이나 해야겠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었다. 주변에서도 실직한 프로그래머 얘기가 종종 들린다.
후배는 요즘 AI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조만간 AI가 짧은 영상도 만들 거라고 내다봤다. 벌써 만들었을까? 아마도 어디에서는 벌써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지브리풍의 유행으로 카카오 프로필 사진이 지브리 천지였다. 지브리 바람이 휙 불고 지나가자 이제는 챗GPT가 만드는 그림으로 사진을 대신하고 블로그를 만든다.
후배가 자기가 쓴 글을 노래로 만든 걸 보여줬다. 요즘 젊은애들이 좋아할 분위기였다. 첫 소절을 듣고 너무 좋았다. 후배는 노래 만드는 AI앱을 썼다고 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놀이터가 생겼다. 후배랑 구글 미팅으로 만나서 한 시간 만에 컴맹인 내가 노래를 만들었다. 가사를 이렇게 써줘, 이런 풍의 노래로 만들어달라고 챗GPT에게 부탁했다. 챗GPT는 반복 구간도 스스로 만들고 내가 쓴 글에 스스로 첨삭을 해서 운율도 맞춰준다. 거기에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방향도 제시해 준다. 챗GPT는 SUNO앱에 지시할 프롬프트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영어 번역도 해준다. 그러면 SUNO라는 AI앱에 챗GPT가 알려준 프롬프트대로 가사를 전달하고 이 노래를 내가 원하는 분위기로 해달라고 선택을 하면 기가 막히게 만들어준다. 즐거운 세상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꼭 롤러코스터를 타고 노는 기분이다. 어린 시절에 손으로 인형 옷을 만들고 모래성을 쌓았지만 이제는 입만 갖고 놀 수 있다. 내 생각을 표현해 주고 내가 쓴 글을 반짝반짝 윤기 있게 만들어준다. 놀거리가 없어서 심심하던 참에 새 장난감이 생긴 것 같다. 요즘이야 말로 노는 게 일이 되는 세상이다. 참 별별 세상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