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by 송나영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한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학식도 풍부하고 잘났다는 사람들이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머리가 나쁜 건지, 우기는 데 고수인 건지 아니면 세상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건지 모르겠다. 묵직하고 굵직한 참말 한 마디가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계엄을 해놓고는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고 또 누구는 그 사람을 옹호한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챙긴 이익을 놓칠까 봐 그런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정치하는 패거리들이야 자기 이익을 위해서 끝까지 우긴다고 해도 그게 맞다고 옳다고 따라가는 사람들은 또 뭔지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하고 맞는 것을 맞다고 하면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기 쉽다. 남들 하는 대로 해야 하는데 남들과 다르면 별나단다. 남들이 욕을 하는 사람은 덩달아 욕을 해야 하는데 안 하면 이상해진다. 잘난척한다고 한다.

유시민작가가 김문수 대선후보의 배우자에 대해 한 말로 시끄러웠다. 유시민작가와 동문으로 서울대 나온 게 부끄럽다는 어느 배우의 말은 대선직후 말의 무게에 대해 다시 배웠다는 말로 바뀌었다.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서울대 운운하는 건지 말이다. 유시민 작가의 말은 자신이 오래도록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에 대한 실망이 담겨 있었다. 비하하려는 말이 아니었지만 설난영이라는 분을 무시하는 말로 충분히 들릴 수 있었다. 김문수의원이 서울대를 나와서 노동자로 도루코에서 일을 했단다. 설난영이라는 분은 노동자 출신으로 함께 연대하다가 김문수후보와 결혼을 했다. 유튜브 영상을 뒤적거리다 보니 설난영이란 분이 여성노동자연합을 자기가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욕을 먹고 있었다. 게다가 노조를 했던 과거를 희석시키려고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자기 같은 사람은 노조 할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 못생기고 센 사람들이 하는 게 노조란다. 유시민작가는 김문수후보가 독재정권에 의해 무자비하게 고문당하고 잡혀갔을 때 백방으로 그분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설난영여사와 고통을 함께 한 경험을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 후 김문수의원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그 부인은 자신과 거리를 두었다고 했다. 오래 해묵은 감정이 남아있었을 거다. 하루 이틀 보고 판단한 얘기가 아니었다. 유시민 작가는 솔직한 사람인 거 같다. 젊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감정을 억누르고 얘기했음에도 말은 오해하기 딱 좋게 튀었다.

아버지의 거짓말이 낯부끄러웠다. 엄마의 추궁과 비난에 아버지의 거짓말은 늘어갔다. 아버지는 사업을 실패하고 용돈이 궁해서 동네 구멍가게에 돈을 종종 빌렸다. 가게를 지날 때 주인은 엄마를 불러 세웠다. 번연히 다 들었는데 당신은 절대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했다. 십만 원, 이십만 원씩 빌리다 오만 원, 삼만 원으로 액수는 줄어들었다. 구멍가게 가기가 부끄러워 어쩌다 가끔 들리는 나는 아버지가 몇만 원을 빌렸는지에 대해 들었다. 식구들에게 거짓말이 하나 둘 늘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경멸로 변해갔다. 당신이 왜 그런 말로 변명을 하려고 하는지 아무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일삼는 아버지와 말도 하기 싫었다. 그런 아버지가 창피했다. 당신이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인 뒤에야 거짓말을 안 하셨다. 일을 안 하니 돈이 없었고 가장이었던 엄마는 알아서 챙겨주는 마누라가 아니니 돈 달라는 얘기도 하지 못했을 거다. 호주머니에 돈 한 푼이 없으니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고 갈 데도 없었다. 아버지는 지하철로 여행을 다니셨다. 공짜니까 아버지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었다. 오늘은 나 오이도로 갔다 온다.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도 가끔 가셨지만 당신은 오이도가 제일 마음 편했던지 그리로 자주 가셨다.

아버지의 거짓말이 싫었던 나는 아들의 거짓말에 혹독했다. 중학생인 아들의 지갑에서 콘돔이 나왔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아들을 크게 꾸짖었다. 도대체 네가 이게 왜 필요하냐고 이유를 얘기할 새도 없이 소리부터 질렀다. 펄펄 뛰는 나한테 아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아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뒤에 아들 친구로부터 콘돔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 돈이 들어온다고 애들한테 그런 유행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얘기를 했더니 그제야 아들은 그걸 갖게 된 이유를 말해줬다. 아이들과 밤새 탄천길로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까지 달리곤 했었는데 잠실쯤 가서 화장실에 있는 콘돔자판기를 보고 애들이랑 호기심에 그걸 뽑았다는 거였다. 별것도 아닌데 내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혼이 났던 거였다. 엄마가 먼저 흥분해서 난리를 치니 아들은 말하고 싶지 않았을 거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할 때가 있다. 상대가 마음 상할까 봐. 거짓말이 아닌데도 믿기지 않아서 거짓말이 될 때도 있다. 솔직을 미덕이랍시고 상대한테 진심을 전한다고 지적하고 충고하다가 말하지 않은 것만 못한 적도 많다. 있는 척하느라고 허세를 부리고 고상한 척, 배운 척하느라고 말로 나를 꾸민다. 말은 가볍다. 깃털처럼 가벼워 쉽게 날아다닌다. 아무 말이나 듣고 그걸 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남들이 그러니까 맞는 줄 알 때도 많다. 온 동네 소문에 귀 기울이는 사람한테는 진실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