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by 송나영

큰 아이 졸업식은 언제인 줄도 모르고 지나서 둘째는 꼭 가야 된다고 우겼단다. 졸업식을 뭐 하러 가냐고 되묻는 둘째에게 큰 형 때 안 갔으니 네 졸업식 사진은 꼭 찍어야 한다고 했단다. 친구는 내 아들도 졸업식 안 갈 거란다. 큰 애, 작은 애 둘 다 졸업앨범이 없다고 했다. 그럴 리 없을 거라 믿었다.

왜 졸업식을 가냐고? 굳이? 왜? 차라리 졸업식날 하루 푹 쉴래. 그래도 명색이 졸업인데 사진 한 장은 남겨야 된다고 했더니 그거 찍으러 굳이 학교에 가야 되냐고 짜증을 낸다. 달라진 요즘 세대 졸업식이다. 대학원 졸업 때나 사진 찍자고 아쉬워하는 나를 달랜다. 졸업앨범은 받아야 된다고 했더니 아들이 자기는 졸업 사진도 안 찍었는데 그걸 왜 받냐고 한다. 친구 말이 다 사실이었다. 친구네와 우리 집만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못내 아쉬웠다.

졸업식은 포기하고 그럼 졸업식날에 맞춰 같이 밥이나 먹자고 전화했더니 웬걸 자기가 졸업식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단다. 학회에서 주는 상을 받아야 한다나. 쾌재를 불렀다. 졸업식에서 수상이라니 부모도 못 해본 일을 아들이 해냈다. 기특한 마음에 며칠 흐뭇한 얼굴로 지냈다. 조카는 이모가 더 신이 난 거 같다고 했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었다. 그걸 잘 아는 후배는 나한테 다 죽어간다고 했었다. 그 후배가 더 신이 나서 자기가 꼭 가서 촬영해줘야 하는데 못 가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보고 꼭 앞으로 달려 나가 단상에 올라가 촬영하란다. 그걸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쪽팔림은 한순간이라고 영원히 남을 기록을 만들라고 했다. 얼굴 각도를 어떻게 하고 쫙 잡아당겨서 찍으라고 코치도 해줬다. 단상은 둘째치고 단상 앞까지도 못 갈 내 푼수인데 사진 찍을 일이 걱정이었다.

아들과 함께 학교를 가면서 후배의 얘기를 해줬다. 아들이 질겁을 한다. 절대 앞으로 나오지 말란다. 누구 아들 아니랄까 봐 똑같은 소리를 한다. 아들은 학교에 몰려있는 졸업생들을 보면서 벌써부터 기운이 빠진다고 질색을 했다. 몰랐던 아들의 모습이다. 내 기억에는 네댓 살의 어린 아들만 있나 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자기는 사진 찍는 걸 정말 싫어했다는 거다. 나도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서 내 사진을 안 찍는다. 아들이 나와 닮은 구석이 정말 많았다. 처음 알았다. 사람들 많은 데 가기 싫어하는 건 나보다 더 심했다.

아들을 달래 가며 꽃다발을 들려주고 사진 몇 장을 건졌다. 꽃다발 들기 싫다고 투덜대는 바람에 난 하루 종일 꽃다발을 들고 다녔다. 졸업식을 앞두고 양재동 꽃 도매시장에 갔었다. 꽃값도 비싸고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결국 장미 두 단, 잎사귀를 한 단 사서 내가 만들어서 들고 간 거다. 아들의 졸업식을 위해 꽃다발을 만들고 혼자 단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만날 아들과 평소에 못 먹던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에 검색도 열심히 했다.

내 졸업식과 달랐다. 거대한 체육관에 전교생이 모두 함께 식장에 가득 차서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분주했었고 정신없었다. 아들의 졸업식은 작은 강당에서 단과대별로 실시해서 졸업식다웠다. 국기에 대한 경례부터 마지막으로 교가 제창까지 새로웠다. 내 졸업식 기억은 각자 학사모의 술을 왼쪽으로 넘기라고 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단과대별로 졸업식을 하니까 학생들을 모두 단상으로 올라오라고 해서 각 과별 교수님들이 줄지어서 한 명씩 학사모의 술을 넘겨주고 악수도 하면서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대망의 아들 수상장면을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흔들리지 않게 찍으려고 애를 썼다. 아들의 옆얼굴만 찍은 거다. 흔들리지 않게 찍으려고 혼신을 다해 팔에 힘을 줬었다. 동영상을 본 후배는 자기가 갔으면 수상할 때 정면으로 확 당겨 찍고 얼굴을 이렇게 저렇게 쫘악 당겨 찍었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졸업식장을 나서니 학교 구석구석에는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길게 서있었다. 아들은 복학생이라 동기들과 친하지 않아서 그 분위기를 어색해했다. 예전에 쭈뼛거렸던 복학생 선배들 모습이랑 아들이 비슷했다. 동아리친구들 몇몇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더니 아들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얼이 빠진 아들을 데리고 졸업식장을 빠져나왔다. 맛있는 거 먹을 기대에 아들과 나는 출발하기 전에 삶은 달걀 두 개랑 사과 몇 쪽만 먹고 하루 종일 굶었었다. 학교 근처에서 먹으려다가 집 근처로 방향을 바꿨다. 오후 여섯 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는 갈빗집을 찾아 맛이라고는 느낄 새도 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아들의 수다가 나의 허기를 가득 채워주었다.

아들에게 동영상과 사진을 카톡으로 전달하고 보니 우리가 졸업식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내 사진도 없다. 조카에게 아들 사진을 보냈다. 왜 이렇게 쑥스러워해! 내 아들이 분명하다. 나랑 참 많이 닮았더라.



작가의 이전글모르는 게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