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겁을 한다.
아들 친구네가 아들집 근처로 이사를 왔단다. 아들 친구는 골프선수를 하느라 골프장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아들은 제 친구와 함께 제2의 독립을 시작했다. 친구 아버지가 지방에 일이 있으셔서 그 집에 자주 머무르곤 한다고 했다. 아들은 친구와 함께 6개월을 살다가 학교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아들 친구네는 가족이 따로 살다가 아예 아들과 함께 살기로 했단다.
아들이 바빠서 밥도 제대로 못 챙기는 거 같아서 함께 살아볼까 하고 고민도 했었다. 넌지시 학교 근처 아파트에서 같이 사는 건 어떠냐고 물었더니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건 아니란다. 섭섭한 마음에 어떻게 바로 아니라고 하냐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아들은 혼자 사는 게 무척 좋단다. 자기는 혼자 사는 게 맞다나. 앞으로도 같이 사는 건 그른 거 같다.
아들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보지 못한 집이었다. 지지고 볶고 난리를 쳤던 가족의 고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집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기로 협의를 하고 남편이 집을 나가면서 오롯이 아들과 나만의 집이 되었지만 상처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남편이 나가고 얼마 안 가 아들은 군대를 갔었다. 그리고 나만 남았다. 오래 살았던 집이지만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어서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한다고 해도 마음에 찰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집을 옮겼다.
아들방을 어떻게 꾸미고 내 방을 어떻게 할지 궁리를 하고 집을 싹 다 수리를 했다. 아들과 함께 잘 살아보려고 애를 쓴 집이었다. 다 큰 아들과 마주 앉아 수다를 떨 일도 없지만 같이 오래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 집에서 6개월도 안 살고 독립했다. 코로나가 세상을 휩쓸던 해에 아버지를 피해, 가족을 벗어나 첫 독립을 했었다. 나는 그 아들 집에 허구한 날 찾아갔다. 너무 자주 찾아가 아들이 그만 오라고 쫓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와 살다가 이제는 온전히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자기만의 세상을 꾸미고 지켜나가고 있다. 아직도 아들이 돌아와 같이 살기를 꿈꾸곤 한다. 나는 혼자 남았다.
아들이 떠난 후 처음에는 집에 들어설 때마다 낯설고 썰렁했다. 분명히 내가 갖고 싶었던 가구들로 채우고 모두 새 걸로 채워 넣은 집이건만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일하는 엄마를 하루 종일 기다렸을 어린 아들이 떠올라 애달파하기도 했다. 아들이 이렇게 외로웠겠구나. 괜히 나 혼자 어린 아들 환영에 시달려 잘 사는 아들한테 전화를 하곤 했다. 아들이 있을 때도 늘 방문을 닫고 무언가에 열중해 있어서 따로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사람의 온기는 달랐다. 아들이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기다리는 집이었던 것이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 아들이 나를 반겼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 혼자 먹는 늦은 밥상은 똑같았지만, 나를 맞이하는 텅 빈 아들 방에 마음이 시렸다. 울컥울컥 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유튜브를 붙들고 넷플릭스를 뒤적거렸다. 책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움직임이 없는 집에 뭔가 움직이는 것들이 필요했다.
나이 육십이 가까워서야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철들지 못했던 이십 대에 독립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갑작스러운 집안의 몰락으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무엇을 해야 맞는 건지 방황했던 이십 대 후반을 거쳐 삼십 대에 나는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다. 늘 비어있는 호주머니로 독립해 살고 싶었지만 독립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부모님 반대로 나가 살 수 없었다고 말하기엔 내 의지는 전혀 준비가 안 된 거였다. 아들을 독립시키고 떠밀린 채 이제 홀로서기를 한다. 내 텅 빈 시간과 공간을 채우려고 궁리를 한다. 처음에는 같이 살 누군가를 찾기도 했다. 공간은 더 넓어졌는데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혼자 사는 게 제일 좋다는 이모는 요즘 심장이 안 좋아 자주 딸한테 가시곤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보살핌만 받는 삶을 질색을 하셨다. 딸들이 잔소리가 심하다고 하셨다. 집에 오면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당신 마음대로 하실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피터 벡셀이 쓴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소설이 있다. 소통이 부재한 현대인의 소외감을 썼다지만 나는 그 책에서 노인의 외로움을 읽었다. 그 책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은 늙었고 힘이 없고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혼자 살고 있었다.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그들은 엉뚱한 일을 벌인다. 말놀이를 하다 오히려 말이 안 통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 책이 자꾸 떠오르는 건 내가 새로운 놀이를 찾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할 일을 만들고 놀이를 찾는다. 작년에는 누워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밭으로 나갔다. 올해도 새로운 놀이를 찾아 나를 채우려고 한다.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소통은 점점 귀찮아진다. 안으로 숨어들기만 해서는 따뜻한 햇볕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꾸 밖으로 나갈 거리를 만들어야겠다. 홀로 서는 삶은 이제 제대로 시작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