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by 송나영

진짜 제대로 사는 건 10년이겠구나. 내가 온전히 건강하게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십 년 남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도 슬슬 여기저기 내 몸이 늙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근육도 풀어져 출렁거리고 눈은 침침해 자꾸 글자를 잘못 읽는다. 예전 같지 않다. 내년이면 환갑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다.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못하는 고집 탓에 늘 나 좋은 것만 선택해 살았다. 전공을 선택할 때도 오래도록 꿈꾸었던 것이었고 그 꿈을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하고 싶어서였다.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 난 이걸 할 거라고 별나게 굴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지만 그게 과연 잘 산 건지는 모르겠다.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진짜 잘 살았다는 생각도 안 든다. 사촌언니는 나보고 너는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지 않았냐고 부러워했다. 근데 요즘엔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식물을 연구한다. 저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 식물은 진짜 아니라고 나한테 왜 그런 전공을 선택했냐고 원망의 눈초리로 말했었다. 아들이 대학을 진학할 때 저가 하고 싶은 것과 막연히 이런 것도 하면 좋겠다고 내가 선택한 것이 있었다. 아들은 저가 바라는 과는 떨어졌고 공교롭게도 내가 선택한 바이오 쪽에 합격을 한 거였다. 수능을 잘 봤지만 안타깝게도 수시납치로 대학을 가게 됐었다. 아들은 논술을 보다가 이건 무조건 합격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그런데 그냥 다 풀지 말고 나갈 걸 그랬다고 일 년이 지나서야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전공을 마지못해 공부했었다. 간간히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노려보면서. 일 학년을 마칠 즈음에 아들은 충격을 받았다. 제가 원하는 대학은 못 갔고 성적에 비해 낮게 갔다고 우습게 생각했던 아들은 오히려 학과 성적이 너무 낮은 것에 놀랐었다. 제 딴에는 그래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동기생들은 정말 열심히 하나 보았다. 아들은 거의 꼴찌란다.

고등학교 때 동기들도 거의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을 진학했었다. 간호사, 약사, 영양사 그네들의 생각에는 없었다.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재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실망을 한 적도 있었다. 아들도 제 선택은 아니었지만 할수록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잘하고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난 내가 우겨서 선택한 거라 악착같이 하려고 달려들었지만 허상에 집착한 건 아닌가 싶다. 미련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다. 소설을 쓰고 싶다. 동화를 쓰고 싶었다가 청소년 소설로 바꾸었다가 매번 꿈을 꾸기만 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소설이 내 흥미를 끌었던 것은 그녀가 나이 칠십에 낸 첫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나이 칠십에 첫 소설을 쓰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도 쓰고 싶은데 이 작가는 어떻게 썼을까라는 생각에 사서 몇 달을 묵혀두었다가 우연히 손에 잡혀서 읽었었다. 십 년 내에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밌게 읽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책을 흘깃 보다가 잠깐만 읽어볼까라는 마음에 잡았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다 읽고 말았다. 그녀의 칠십 년이 다 녹아있는 것만 같았다. 첫 소설이라는데 어설프기는커녕 그동안 읽었던 소설들을 다 잊게 만들었다. 소설 속의 말들은 그럴듯하지 않았다. 그 말들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꿈조차 늙어가는 것 같았는데 내 안에서 꿈이 생생하게 피어났다.

예전과 속도가 다르다. 하고 싶은 건 무조건 당장 해야 하는 성미라서 마구 달려들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찬찬히 하나씩 준비를 한다. 근데 내 멀쩡한 건강과 정신은 이십 년, 삼십 년이 지속되지 않을 거라 십 년밖에 남지 않은 거 같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차려진다. 그나마 기운 있을 때 꿈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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