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

by 송나영

내 사춘기를 채운 건 주말의 명화다. 명화극장을 통해 해외물을 맛보았다. 아빠 무릎에 앉아 주말 명화를 보던 때 더빙이란 것을 몰랐던 나는 그네들의 유창한 한국말을 당연히 여겼다. AFKN의 주한미국방송에서 그렇게 영어로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주말마다 영화를 기다렸고 주말의 명화가 짜안하면서 시작하는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설렜다.

요즘 미국영화가 부쩍 생각나는 것이 달라진 아이들 때문이다. 우리와는 너무나 달랐던 미국 하이틴 영화에 등장하는 급식실의 기싸움을 흥미롭게 봤었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서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서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집에 들어왔었다. 점심 도시락은 학교에 가자마자 몇 숟갈 퍼먹고 점심시간 전에 다 먹어치우고는 야간자율이란 이름표를 단 강제학습을 하기 위해 남겨 둔 저녁 도시락을 아이들과 재잘거리며 먹었다.

국민학교 때는 조개탄을 때는 난로가 교실 한가운데에 있었다. 한겨울 추위에 차가운 밥을 먹게 되니까 선생님은 아이들 도시락을 난로에 차곡차곡 올려두었다. 밥이 눌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밥이 살살 타는 냄새가 나면 아이들이 밥 타는 냄새난다고 선생님을 불렀던 기억도 난다. 엄마가 챙겨준 보온도시락보다 난로 위에 올린 아이들의 도시락이 부러워서 엄마를 졸라 양은도시락으로 바꿨었다. 교실에서 도시락을 나눠먹을 때처럼 재미진 게 어디 있을까? 함께 반찬을 나누고 밥을 나누었다. 나는 해본 적이 없지만 어떤 아이들은 대야같이 커다란 스뎅그릇을 들고 와서 아이들 밥과 반찬을 함께 넣어 비빔밥을 해먹기도 했었다. 내 친구는 매일 싸 오는 김치볶음이 불만이었고 나는 집에서 먹어볼 수 없는 그 반찬을 탐을 냈었다. 넷 중 막내였던 친구의 엄마는 솜씨가 기가 막혔다. 그 친구가 반찬을 꺼내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곤 했다. 특히 찬밥을 크로켓으로 만들어서 가져오면 나는 그거 하나 얻어먹으려고 친구한테 갖은 아양을 떨었다. 각자의 집에서 싸 온 각양각색의 반찬을 모두 함께 펼쳐놓고 밥을 먹었다. 우리는 식구였다.

요즘 학년이 바뀔 때 무척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와 함께 밥을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이다. 급식실로 이동을 하니까 아이들은 함께 먹을 밥친구가 제일 걱정인가 보았다.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한 여자아이 중에는 혼자 밥 먹기가 싫어서 굶기도 한다고 들었다. 같은 반 친구가 밥을 안 먹어서 걱정이 된 아이는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같이 다니는 무리의 아이들은 왜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냐고 추궁을 했다. 혼자 밥 먹는 게 불쌍하다고 얘기했다가 친구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차마 얘기할 수 없었던 아이는 친구들의 추궁에 힘들어했다. 미국영화에서만 보던 급식실의 기싸움을 들었다. 삼월이 시작되자 종종 여자아이들은 급식실에 함께 갈 친구가 안 생길까 봐 걱정을 했다. 너무 많은 아이들과 함께 몰려 다니기도 싫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을까 봐 고민도 많이 한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세대다. 앞뒤에 앉은 아이들이 밥친구였고 활발한 아이들은 반을 두루 돌아다니며 먹기도 했었다.

급식실에서 아이를 왕따 시키거나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텃세를 과시하는 모습은 미국영화에서나 본 거였다. 그게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 되었다. 반에 친구가 없으면 다른 반 친구랑 함께 먹으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그럼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했다. 급식실에는 자기네 반만 들어가서 먹어야 한단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급식실의 풍경은 참 낯설다. 급식실로 뛰어 내려 가 밥 먹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았다. 함께 밥 먹을 친구 때문에 고민을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같이 먹기 싫다고 앞자리 친구에게 너무 못되게 굴었던 게 자꾸 떠올랐다. 친구가 없었던 그 아이를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모지리다.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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