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르고 지낼 때가 많다. 세상일도, 내 일조차도 말이다.
브런치는 나의 대나무숲이었다. 속이 막혀서 답답할 때, 오랫동안 말하지 않고 묵혀둔 해묵은 감정의 찌꺼기가 막 뿜어져 나올 때 대나무숲에 대고 쏟아냈다. 내가 사람을 잘못 사귄 게 아닌가 자책할 때도, 내가 이상한 건가 나를 다시 돌아볼 때도 그냥 잊지 못하고 켜켜이 감정을 쌓아두고 사는 나 자신이 답답해 대나무숲에 크게 떠들었다. 지나간 내 인연에 대한 미움도, 줄어들 것 같지 않은 분노의 감정도 대나무숲에 와서 다 풀어놓았다. 친정엄마에 대한 미움과 남편에 대한 뒷담을 숲에 와서 다 쏟았다. 전에는 주변 사람들을 쓸데없이 긴 얘기로 무척 괴롭혔었다. 남의 불편한 속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것도 흥분해서 침 튀겨가며 난리를 치면서 말했던 거다.
세상은 어차피 다 돌고 도는데 숨긴다고 숨겨질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친하건 안 친하건 간에 속없이 내 속사정을 얘기해서 상대만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말 안 해도 될 내 사생활을 굳이 먼저 얘기해서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먼저 속을 털어놓으니 상대도 쉽게 나에게 속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그게 또 버거워질 때도 있었다. 내 속이 종지만 한데 그걸 몰랐던 거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은 내가 주변에 신경도 제대로 못 쓰는데 너그러운 척했던 거다. 배려만큼 힘든 게 없다는 걸 나이 먹을수록 느낀다. 내 딴에는 배려라고 생각해 모른 척했는데 그게 무신경으로 느껴져 상대의 원망을 살 때도 있더라.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란 걸 이제야 안다.
그런데 세상을 다 알고 사는 것처럼 얄팍한 경험으로 주변에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을 했었더랬다. 그네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이해한다고 아는 척을 하는 건 주제넘은 짓인 거였다. 내가 참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었다는 걸 요즘 들어 불쑥 느낀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곤 한다. 안 해도 될 말을 참 많이 하고 살았구나.
브런치는 나의 대나무숲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켜켜이 쌓여 곰팡이가 피고 쩐내가 나는 묵은 감정들을 얼추 털어버리고 나니까 요즘 할 말이 없어졌다. 다 털어버리고 나니까 혈압이 떨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혈압이 떨어졌다 올랐다 해서 약의 농도를 줄였다 다시 늘였는데 어느새 가라앉은 내 감정만큼 다 떨어졌다. 숨 쉬는 것 말고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해서 매번 의사의 지청구를 달고 살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혈압이 정상 범위 안으로 내려갔다. 믿기지 않을 만큼 혈압이 가라앉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끔 떠오르는데 미움이 사그라들어서 그런가 브런치를 찾아오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더니 댓글이 달려있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못난 내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것 같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늘 찾아와 주는 분들이 신기했고 고마웠지만 쑥스러워 표현할 줄 몰랐다.
댓글은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운영정책 위배로 삭제됐다고 적혀 있다. 세상에는 모르고 살아도 될 만한 일이 정말 많았다. 알아서 병인 적도 참 많았다. 괜히 몰라도 되는 일을 알아서 마음 달아서 초조했던 적도 많았다. 내 역량이 아닌데도 무던하게 못 잊고 지낸 일이 많았다.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무엇을 해도 안 되는 걸 많이 겪고서야 차분해진 거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도 들까불던 마음이 대나무숲 덕분에 잔잔하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