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나영

모질고 사나운 '그악스럽다', 사납고 악한 '포악하다', 잔인하고 악한 '잔악하다' 하나같이 악자가 들어있다. 악질인 사람들이 늘어가는 건지 세상이 악질로 변해가는 건지 신문을 읽기가 싫다. 악질이 판을 치는 세상 같다. 자식을 죽였네, 부모가 해달라는 것을 안 해줘서 팼다는 둥, 죽였다는 둥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악스럽고 포악하고 잔악하다.

정신이 멍하다. 아침에 세차를 부리나케 하고 세차장을 나서는 길인데 하필 도로 진출입로 모퉁이에 빨간색 대형 SUV가 한 대 서 있다. 고개를 쭉 내밀어 차가 오는지 확인을 한 후에 천천히 도로에 진입했다. 멀리 휘어진 길을 돌아오는 흰색 차 한 대 빼고 아무것도 없다. 갑자기 빵 소리가 크다. 뒤를 보니 어디선가 나타난 차가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며 달려온다. 정지신호에 걸리자마자 차주는 뛰어나와 기세 넘치게 달려온다. 머리가 허연 차주는 일단 악부터 쓴다. 그렇게 박으면 되냐고? 뭘 박아? 박지도 않고 자기도 피했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박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세차장 주인 할아버지도 그 남자의 고성에 밖으로 나오셨다. 차분히 죄송하다고 말할 참이었는데 소리부터 지르는 통에 미안하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뒤에 오는 흰색 차는 분명히 봤는데 댁의 차는 못 봤다고 그래서 천천히 들어오지 않았냐고 했다. 차주는 말이 막혔는지 잠시 주춤하더니 또 왜 박았냐고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고 주먹을 휘두른다. 기가 찬 일이다. 갑자기 나오는 차에 당황한 건 충분히 미안한 일이지만 본인은 전혀 양보하지 않았으니 그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데 말이 안 통한다. 분명히 90도 정도로 꺾어 들어왔는데 본인도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달렸으리라. 세차장에서 갑자기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차가 자기를 피해 갈 거라 생각했으리라. 신호가 바뀌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눈을 떴는데 도대체 뭘 본 건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블랙박스부터 켰다. 전방 화면에는 도무지 길에 차가 없다. 후방 화면에는 느닷없이 차가 나를 피하는 장면부터 찍혔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아무리 돌려봐도 차의 기척도 없다. 그 차가 확 달려들다가 내 차를 피해 옆 차선으로 간 것만 화면에 찍혔을 뿐이다. 빨간 차가 시야를 막아서 휘어진 길에서 돌아오는 것을 제대로 확인 못 한 게 맞긴 하다.

코로나 이후로 끼어들겠다고 깜빡이를 켤 때마다 달려오는 차를 많이 보게 된다. 양보는 안중에도 없다. 비켜 내가 간다고 눈을 부릅뜨고 달려든다. 저 멀리에서 충분히 거리가 있는데도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저리 가라고 난리를 친다. 규정속도에 맞춰 운전을 하면 차를 엉덩이에 바짝 갔다 대고 빨리 가라고 흥분한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는 더 심하다. 빨리 가라고! 빨리 가! 차만 타면 야수가 되나 보다. 느긋한 운전자를 보면 그 희소성에 오히려 감동스럽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줏대 있게 운전하는 모습이 멋지다. 예전에는 운전하면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규정속도에 맞춰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규정속도는 개나 줘버렸나 보다. 그 흐름을 못 맞추면 운전을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배웠다. 왜? 도대체 왜?

한동안 속도를 즐겼다. 운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라 화병이 도질 때 차를 몰았다. 속도가 주는 긴장감에 몰입하면 머리가 점점 텅 비어서 세상일은 잊어버리곤 했다. 강릉을 가고 부산을 가고 땅끝으로 차를 몰고 나섰다. 남남이나 마찬가지인데 남남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살면서 마음이 고단할 때 차를 몰았다. 사춘기가 심하게 온 아들이 말을 끊었을 때 다른 사람들한테 아들이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는 말을 전해 들었다. 서러움을 잊으려고 차를 몰고 통영으로 갔다. 꽃이 잔뜩 핀 꽃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다시 사는 곳으로 달려왔다. 새벽 고속도로는 간간히 만나는 트럭을 빼고는 칠흑같이 어둡고 외롭다. 그저 빨리 달려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다. 미친 듯이 밟다 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화도 가라앉았다. 서러움도 순간이 된다.

불안을 버리니 시원하다. 이제 나는 천천히 달린다. 급하지도 않다. 규정속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화가 많으면 세상이 잘 안 보인다. 내 감정에 몰입돼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용광로처럼 끓어오른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핏발 선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다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데 오히려 내가 부린 성질로 더 많이 다쳤다.

오랜만에 소리를 질렀다. 신호가 떨어지고 모두 출발한 자리에 당황한 차주만 허둥지둥 자기 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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