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흘

by 송나영

안 믿는데 뭐라고 그러냐? 저가 안 믿는데. 이모의 친구는 사흘동안 사라진 이모가 도대체 어디에 갔는지 너무 궁금했었다. 이모는 미국 갔다 왔다고 했지만 친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한 십 년 만에 미국에서 놀러 온 이모랑 나는 설날에 속초로 가는 차 안에서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한국의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평평한 미국 땅보다 이쁘다고 했다. 이모는 속초로 가는 길에 휴게소 우동을 너무 맛나게 드셨다. 휴게소 음식을 유튜브로 볼 때마다 먹어 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이모는 갑자기 오산비행장에서 미국 간 적 있다고 했다. 오산비행장? 거기서 어떻게 미국을 가? 내가 몰랐던 이모의 과거가 딸려 나왔다. 이모는 미 8군에서 알바를 했다. 이모 친구 아버지가 미 8군에서 일하셔서 그분 소개로 친구랑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60년대에 고등학생이었던 이모는 하라는 공부는 뒷전이었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쎄시봉을 들락거렸다. 이모는 소위 쎄시봉 죽순이었다. 낭만에 죽고 못 사는 청소년이었다. 이모가 미 8군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친하게 지낸 싸전은 이모한테 어디 가고 싶냐고 물어봤고 이모는 바로 미국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당장에 내일 짐 싸서 오산비행장으로 오라고 해서 이모는 소풍 가 듯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미군들이 타는 군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갔다. 미국 어느 할머니댁에 막상 갔지만 비자가 없었다. 이모는 비자가 있어야 하는 줄도 몰랐다. 이모는 사흘 만에 미국에서 쫓겨났다.

엄마한테 절대 말하지 말아라. 이모의 학비를 대던 엄마는 어찌나 공부하라고 닦달하고 잔소리가 심했던지 이모는 질색을 했다. 사흘 동안 어디로 사라졌다가 돌아온 이모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두들겨 맞고 머리를 박박 깎였다고 했다. 그리고 가발을 뒤집어쓰고 쎄시봉으로 갔다. 친구는 도대체 사흘동안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모의 행방이 궁금했다. 이모의 미국행은 너무 허무맹랑해서 친구는 안 믿었다. 아직도 식구들은 이모가 미국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가출한 걸로 알고 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실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럴 리 없다고 말도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건 신문에도 안 나오고 드라마로 만들지도 않는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 해도 그런 믿기 힘든 막장은 보여줄 수 없다. 자기가 아는 사실만, 자기가 겪은 사실만 맞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일도 있다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말도 안 되는 말 하지 말라고 한다. 상식을 기반으로 소통하려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지 이게 말이 되냐고? 속에서 천불이 나고 부아가 치밀어 부글부글 끓어도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걸 하소연하면 더 힘든 일이 벌어진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취급받는다. 거기에 충고가 곁들여지면 점입가경이 된다.

아침마당 같은 데 나가 봐. 너네 부부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상담받고 좋아지는 경우가 많더라고.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서 화를 낼 수도 없다. 비슷한 처지가 아니면 아무리 설명해도 대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은 이해 못 하는 상식밖의 상황들을 일일이 설명하다가 지쳐서 입을 다물게 된다. 상처가 너무 많은 사람과도 대화가 힘들다. 몇 겹의 철갑으로 자신의 상처를 감싸고 있다가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고는 상대를 향해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

며칠 전 아들 조심 시키라고 했던 얘기의 끝을 들었다. 함부로 오지랖 떨면 안 된다고 꼭 아들한테 일러주라고 했다. 여자애가 오빠를 좋아해서 추파를 던지다 안 통하자 남자애를 성폭행으로 고소했단다. 회식이 끝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여자애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착한 오빠는 총대를 메었다. 중등 시절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술이 깰 때까지 함께 있었다고 했다. 둘 다 술을 마셔서 잠시 차 안에서 잠이 든 게 화근이었다. 부모가 의사라는 그 여자 쪽에서 합의금으로 3억을 요구했다고 한다. 아무 짓도 안 한 남자 쪽에서는 펄펄 뛰었고 합의하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로 갔다. 증거가 없을 때는 여자의 말이 증거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법률 상식이란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 명문 학교를 나오고 번듯한 직장을 지녀도 상식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있다. 껍데기는 훌륭히 꾸몄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상식을 배우지 못한 거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배운 거다.

상식이 통하면 마음이 통한다. 말도 통한다. 욕을 먹어도 억울하지 않다. 물론 나를 알아주고 상대를 이해하니까 이 말 한마디로 상대의 태도가 변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부모 자식 간도 마찬가지다. 내가 애써 한 만큼 인정해 주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가 보다. 꼭 뭔가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있다. 경우랍시고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본인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믿음도 만드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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