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나영

오래 살까 걱정이다. 너무 욕을 많이 먹고살았다. 안 보고 절대 마주치지 않으면 잊을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살만하니까 오히려 억울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거다. 해결해서 될 일 같으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밑도 끝도 없는 욕에 당한 억울함이 가끔씩 나를 친다. 스무 해를 두고 깔려있는 말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대학을 나온 게 욕먹을 일인가? 대학을 나와서 잘난 척한다고 했다. 하지 말래서 안 했는데 안 한 게 욕먹을 일인가? 애 아빠는 자식 달린 이혼남이었다. 두 번째 결혼을 하면서 시가에서는 혼수를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짐이 너무 많으니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다짐까지 시키니 알았다고 했다. 엄마의 걱정을 뒤로하고 괜찮다고 안 해도 된다고 빈 몸 달랑 시집을 갔다. 시모의 진짜 하나도 안 해왔다니까라는 전화 대화를 들었다. 나 몰래 친구와 수다를 떨다 우연히 걸렸을 뿐이다. 시모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욕을 했고 그것을 충실하게 사촌동서가 전달했다. 사촌동서를 끊었다.

미련한 일이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하면 짜증이 나는데 며느리 욕을 그렇게 하니 아들이 편할 리가 없다. 지인의 시모는 아들이 잘못을 하면 꼭 전화를 해서 아들 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너무 죄송스럽다는 그 시모에게 화를 낼 수 있을까? 그 아들에게 끓어오르는 화를 터뜨릴 수 있을까? 아들을 위하는 마음이 비뚤어진 엄마들을 종종 본다. 며느리 때문에 자기 자식이 안 된다는 그런 말은 드라마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며느리 하나 잘못 들어와서 집안이 안 된다는 말은 할 말이 아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데 집안이 잘 될 수가 있겠는가? 자식이 자기 뜻대로 안 되자 이제 며느리를 길들이려고 온 신경을 기울여 들들 볶는데 집안이 편안할 수 있겠는가? 하루가 편치 않은 집에서 살았다. 전쟁이 일상인 집에서 살았다.

시누이의 남자친구가 돈을 자꾸 빌려간다고 했다. 결혼을 앞두고 걱정스러워 나에게 얘기를 했다. 부모님과 얘기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시누이는 말하지 않았다. 시부모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천둥도깨비가 나온 줄 알았다. 절대 그런 놈과는 결혼시킬 수 없다고 난리가 났다. 딸을 설득하는 일은 그 집에 없는 일이다. 자식들이 아무 말도 안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밥상에서도 침묵을 지키는 이유가 있었다. 말 한마디가 폭탄이 되는 집이다. 시부가 결전을 앞두고 잠도 마다하고 소파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가죽으로 둘러싼 것을 잡고 비장한 각오로 밤을 지켰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도끼란다. 딸이 그 자식을 데리고 들어오면 그 자식을 쳐 죽인다고 했다. 그 자식은 딸이 결혼을 약속한 소중한 남의 자식이다.

휴대폰에 불이 났다. 1시간의 외출이었다. 새로운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려고 동네를 돌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아들의 전처 자식을 유치원이 끝나자마자 피아노, 미술학원에 뺑뺑이 돌렸다. 아이는 피아노 학원 가기를 싫어했다. 선생도 없이 덩그마니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가자! 애를 데리고 나와 새로운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 선생이 데리고 앉아서 지도해 줄 학원을 찾았다. 그 사이에 나를 찾는 전화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수도 없이 걸려온 것이다. 그들은 전처가 손녀를 데려간 줄 알고 난리를 쳤다.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친엄마가 애를 데려가곤 했던 것이다. 만나게 해 주면 될 일을 못하게 막으니 항상 문제가 생긴다. 할머니는 매일 애한테 친엄마 욕을 했었다. 인천 미친년이라고.

전며느리의 욕을 들었다. 같이 산 시간도 얼마 안 되는 거 같은데 이야기는 참으로 다양했다. 배추 몇 통을 던져주고 외출하고 들어올 동안 김치를 담으라고 했다. 스물세 살의 며느리는 친정으로 도망갔다. 반복되는 친정 도피행에 시모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새 며느리에게 그러지 말라고 무한 반복해서 말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초등학교 입학생과 어린 아들을 오롯이 혼자 돌봐야 했던 나는 시모에게 도저히 힘들어서 안 되겠으니 친정에 잠깐 가겠다고 했다. 이해한다고 했다. 친정에서 돌아오자마자 네가 그럴 수 있냐고 자라와 솥뚜껑 얘기를 무한반복했다.

거리를 두었다. 안 보고 안 듣기로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남편과 살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나 심하게 내 욕을 하고 살았던지 꿈에까지 나와 내 원망을 하는데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네 엄마 무서워서 너네 집에 안 간다고 조부모 집에 다녀온 애가 전해줬다. 주말마다 아이는 조부모 집에 용돈과 선물을 받으러 갔다. 아이의 엄마가 면접교섭권을 신청하면서 소송을 벌였을 때 시부는 돈만 밝히니까 아들에게 빨리 이혼하라고 했던 그 며느리를 붙들고 울면서 읍소를 했다고 들었다. 새 며느리가 아이를 못 만나게 한다고.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보통내기가 아니었으니 살았던 거다. 보통내기였으면 벌써 달아났을 일이다. 미련했기에 결혼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고 버텼던 거다. 고집이 세다고 했다. 근처에 사는 시모의 큰동생은 김밥집을 했다. 낮도깨비 같이 느닷없이 우리 집에 나타나 청소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곤 했던 시외조모를 뵈러 갔다. 만난 적 없는 시외조모가 우렁각시처럼 살림을 해서 처음에는 혼비백산했었다. 잠깐 들른 시외갓집에서 교인들은 단체 주문 김밥을 함께 싸고 있었다. 나는 빙 둘러앉은 교인들 틈에서 내가 아주 고집이 세다는 시외삼촌 말을 버티고 앉아 들었다. 그들은 뒤에서, 앞에서 욕을 했다.

어느 할머니가 그랬다. 자식을 키워보니까 딱 자기만큼 짝을 데려온다고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남편 욕을 달고 살던 나는 그때 입이 다물어졌다. 할머니 말이 맞다. 내 만큼의 짝인 것이다. 내가 사람 보는 눈만큼 내가 믿는 것만큼 가늠하고 만난 짝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러셨다. 너도 같은 사람이다. 아들 갖은 사람이라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다. 시모를 이해하라는 말이셨다. 이해는 쉽지 않다.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찌르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아니면 되지. 굳이 마음에 두지 말자고 다짐하며 살지만 듣지 않아도 되는 욕은 차곡차곡 쌓인다. 그게 어느 날 둑이 터지면서 밀려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미국에서 사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