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by 송나영

아들이 떠났다. 밤새 짐을 챙겨 새벽녘에 출발했다. 두 번째로 집을 나가는 것이다. 처음 학교 정문 앞에 방을 얻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학교를 앞에 두고 사이버 강의만 들었다. 아들이 나간 자리에 둘만 남았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어도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버팀목이 됐다. 제 아빠와 아들 그리고 나는 각자 방에서 각자 살 따름이었다. 우리는 섞이지 않았다.

그만 오라고. 아들은 나를 쫓아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오는 엄마를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봤다. 청소를 핑계로, 먹을 게 떨어진 거 같다고,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갖은 핑계를 대고 아무 때나 찾아갔다. 친한 지인이 나의 투덜거림에 주책맞게 왜 그리 자주 찾아가냐고 웃으며 말했다. 아들을 찾아간 게 아니다. 집에 있는 남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그리로 도망쳤을 뿐이다. 아들이 보고 싶긴 했지만 그보다는 집에 있는 불안감이 너무 싫어서였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짜증을 선택했다. 찌푸린 얼굴의 아들을 보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욕을 먹어도 차라리 그게 더 나았다.

집이 아니었다. 불안이 방을 차지하고 두려움이 세를 든 곳이었다. 문을 닫고 쳐다보지 않고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엇갈린 시간을 살았다. 아들을 학원에서 데려오기 전에 급하게 저녁 준비를 하던 날이었다. 아직 올 시간이 좀 남았는데 벌써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왔냐고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부드럽게 뒤에서 나를 감쌌다. 소름이 끼쳤다. 공포에 질렸다. 헛것을 본 것처럼 덜덜 떨며 뒷걸음질을 쳤고 비명조차 얼어붙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아이가 아니었다. 마치 어제 싸운 일인 양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냐고 말했던 거 같다. 헉하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장갑을 싱크대에 내팽개치고 아이의 학원으로 내달렸다.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마디도 안 하고 지냈는데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이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공포에 떨던 나는 그 두려움을 결국 아이에게 온전히 퍼붓고 말았다. 아이는 고스란히 나의 폭언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배속에 간신히 가라앉혀 묵혀두었던 말들을 다 끄집어냈다. 아들과 나는 또 한참 멀어졌다. 눈에 힘을 주고 집안의 공기를 무시하면서 부모를 외면했다. 모른 척하고 산다고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른 척하려고 얼마나 많은 애를 쓰는지 모른다.

헤어지는 날까지도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내 탓으로 돌린 자신의 손해를, 한 순간에 사업체를 버리고 나 몰래 일을 꾸미고, 나를 속였던 그 일을 영혼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참 어렵다. 믿음을 산산조각 내고 가루로 만든 다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치 지난 시간은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건 공포를 불러온다. 남남으로 살아온 세월을 무시하는 건 나를 지우고 새로운 나를 다시 출발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끈이 끊어진 지 오래됐다.

왜 아이가 자신을 피하는지 몰랐다. 아빠의 전화를 피하고 문자를 안 받는 이유를 몰랐다. 아이가 두려움에 떠는 것조차 몰랐다. 끝을 내기 위해 아들을 가만히 두라고 말을 꺼냈다. 아들의 어정쩡한 행동, 명절에 친가에 가기 싫어했던 거, 싱크대에 그가 사용한 그릇만 덩그러니 남겨두었던 나의 적개심을 그제야 끄집어냈다. 자신이 괴물이라고 아니 그 이상의 잔인하고 흉악한 폭력범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미안함을 모른 척하고 고마움을 모른 척했다. 그게 깊이 상처를 새긴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무얼 해줘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혼자 아등바등 책임감으로 마음 졸였다. 아들은 원치도 않는데 해주고는 섭섭해했다. 바빠서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늘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언제 생활비가 떨어질지 몰라 두려웠기에 쉴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짬을 내서 휴가계획을 짜고 아들에게 놀러 가자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아들을 챙겨주지 못할까 봐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추석 명절은 시험 기간과 겹칠 때가 많았다. 밤늦게 일이 끝나자마자 아들과 함께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아들은 잠에 빠지고 피로가 겹친 나는 긴 귀성 행렬에 끼어들어 잤다가 운전했다가 하면서 남원으로 갔다.

야! 시원하다! 아들은 진짜로 속 시원한 얼굴로 좋아했다. 친가 식구들한테 시달리지 않아 마음이 시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명절 때마다 시댁에 오지 않는 엄마에 대해 물어봤을 테니까.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 차를 대고 우리는 산을 탔다. 나는 너무 졸렸다. 다리가 점점 풀렸다. 신나는 아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발작 걷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다 결국 한 시간도 채 못한 산행은 거기서 끝이 났다. 다음에 꼭 다시 오자고 너무 아쉬워하는 아들을 달래며 산을 내려왔다. 피로도 풀 겸 노천탕이 많이 있는 찜질방으로 갔지만 나의 잠은 폭포처럼 쏟아 내렸다. 아들은 같이 놀자고 노천탕으로 나를 끌었지만 나는 잠에 끌려다녔다. 밥을 먹으면서도 쏟아지는 잠에 정신을 못 차렸다. 어린 아들은 같이 탕에 들어가자고 나를 끌었지만 나는 잠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햇빛처럼 환하게 지리산에서 외치던 아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가지 못했다.

독립은 내가 해야 한다. 해주지 못한 게 많아서, 마음 써주지 못한 게 많아서 사랑이라는 말을 걸고 잔소리를 했다. 간섭을 하고 참견을 했다. 엄마 나도 생각이 있다고 했던 아들의 말을 나는 늘 기억한다. 남다르면 남다르다고 다른 애처럼 평범하면 안 되냐고 독한 말을 했다. 아이의 남다름을 자랑으로 여기던 속마음을 보여 준 적도 없다. 아이의 친구들을 간섭하고 나쁜 버릇을 키울까 봐 더 혹독하게 혼을 냈다. 아이가 조개처럼 입을 다물자 내가 얼마나 상처를 많이 줬는지 알았다. 그렇게 심하게 말하지 않아도 잘하는 애였는데 사랑이랍시고 폭탄을 던졌다. 아들은 늘 저와 비슷한 착한 아이들을 사귀었고 신중한 성격답게 위험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내 걱정이고 내 두려움이었다. 엄마노릇을 잘 못하는 내 무지함이 애를 옭아맨 것이다. 아들을 믿는다고 해놓고 호시탐탐 아들이 잘하는지 엿보는 내가 어렸던 것이다. 아이는 날개를 펴고 날아가려는데 날개를 만지작거리며 놓아주지 않은 건 내가 불안해서 그런 것이다. 혼자 남겨질까 봐. 이제는 네 세상을 펼쳐보라고 말하면서 발을 자꾸만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서럽게 한다고 섭섭하게 한다고 말이다. 아이도 투덜거릴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그것조차 마음껏 받아주지 못했다. 듣고 흘려버릴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섭섭하다고 되레 아이에게 짜증을 부렸다. 아들도 알았다. 아닌 척하는 엄마가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짜증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이라는 탈을 쓴 간섭을 분별할 줄도 알았다. 씩씩한 척하는 엄마가 외로울까 봐 걱정하는 마음을 숨길 줄도 안다. 이제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오롯이 서야 될 때인 것이다. 아들과 함께 다시 한번 새로운 길을 날아보고 싶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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