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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Sep 26. 2024

산, 바다

  스무 살 무렵에 산을 자주 갔다. 마음이 답답하면 우이동, 도봉동으로 향했고 북한산을 올랐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풀리지 않는 질문에 가슴이 꽉 막히면 산으로 갔다. 혼자서 도봉산을 오르고 수유리로 가서 북한산을 올랐다. 가끔 동행하는 남자 친구도 있었지만 주로 나 혼자였다. 어디 말할 때도 없고 말을 해서 풀어질 일도 아니었기에 묵묵히 산을 타는 것으로 나를 달랬다. 산을 타고 내려오면 묵직해지는 다리와 달리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었다.

  이십 대 후반 추석명절을 끼고 일주일을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친한 언니와 둘이서 산으로 향했다. 서울밖으로 나가 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추석명절의 입석까지 빼곡한 고향 가는 기차를 처음 탔다. 전주에서 내려서 남원 가는 버스를 타고 지리산을 올랐던 거 같다. 사브작 사브작 걷는 언니와 맞춰서 걷자니 힘이 더 들어서 내가 앞서고 언니가 뒤에서 각자 맞는 보폭으로 따로 걸었다. 첫날 노고단으로 계단 같은 바위들을 타고 올라서 간신히 노고단 산장에 도착했었다.

  용을 쓰고 올라왔는데 언니가 지인과 구례에서 약속이 있었고 우리는 화엄사방향으로 다시 지리산을 내려갔다. 섬진강에서 우리는 재첩국을 먹고 하루를 쉰 다음 다시 산을 탔다. 지그재그로 지리산을 종주했었다. 달빛에 비친 반야봉으로 넘어가는 길에 하늘에 뜬 보름달에 감탄을 했고 마천 가는 임업도로로 길을 잘못 들었다가 방향을 돌려서 우연히 만난 집에서 염소고기 대접을 받기도 했다.

   민박집에서 알려준 대로 청학동을 찾아보겠다고 불일폭포를 끼고 오르다 도인을 만나기도 했다. 예전 구한말 사진에서나 보던 모습 그대로 도인은 초가집에 살았다. 도인은 오던 길로 돌아가라고 그렇지 않으면 원시림이라 길을 잃는다고 신신당부했다. 꼭 새겨듣고 다시 오던 방향으로 돌아가다 암석으로 가득 찬 갈림길에서 또 길을 잃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두렵다. 오직 한 가지 목적만 분명해진다. 삶의 잡념은 끼어들 틈이 없다.

  청학동은 찾지도 못한 채 간신히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었다. 우리는 산장을 나와 장터목 근처에 텐트를 여러 채 지어놓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 밤새 음주가무를 즐겼다. 산에서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거나 힘이 들면 짐을 다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들이 버린 텐트를 주워다가 여기도 치고 저기도 쳐서 방이 많으니까 아무 데나 골라 자란다. 해먹도 여러 개 나무에 걸쳐놔서 지리산 꼭대기가 아니라 캠핑장 같았다. 지금은 노래방 문화지만 80-90년대만 해도 술 한 잔 마시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처음 본 이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언니는 '베사메무쵸'를 불렀고 난 이문세의 '내 오랜 그녀'를 불렀다. 지리산 장터목 산장 아래 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언제부터인지 답답하면 바다로 간다. 산에 갈 생각은 전혀 없고 바다로 향한다. 처음 본 부산 해운대 밤바다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멀미를 했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바다를 찾아간다. 마음이 답답하고 미래가 불안하고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가슴이 막히면 바다로 간다. 앞이 훤하게 트인 바다를 보면 살 거 같다. 산을 안 간 지가 꽤 오래되었다. 설악산을 가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서 휘익 둘러보고 다시 내려와 바다로 간다. 산행은 산책 수준에 머무른다. 바다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좋고 걷는 것도 좋다. 바다를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삶의 미련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가 먹으니 좋아하는 것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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