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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Oct 16. 2024

먹빛

 포천을 다녀왔다. 아버지의 영탑이 포천에 있기에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길에서 한나절을 보낸다. 끔찍한 구리 IC의 교통체증을 덜 겪으려고 새벽 어두컴컴한 길을 나섰다. 새벽길에는 대형 트레일러나 화물차가 많다. 바삐 움직이는 화물차 틈바구니에서 나 혼자 느긋했다.

  하얀색과 노란색의 달리아를 새 꽃으로 바꾸러 가는 길이다. 봄이면 영탑에 꽃을 새로 사들고 갔다. 양재동 꽃 도매 상가에서 조화를 산다. 작약을 주로 샀고 수국, 달리아를 샀다. 자손이 번성해 좋다고 반포 지하 터미널의 꽃상가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기억을 떠올리며 작약을 자주 골랐다. 작약은 꽃이 어른 주먹보다 커서 열 송이 한 묶음이 한아름이 된다.

  참 희한하다. 말이 안 맞다. 귀신은 붉은색을 싫어한다는 미신말이다. 강시도 붉은색 옷을 입고 다니고, 죽은 이를 위한 조화도 붉은색 일색이다. 늘 붉은색, 분홍색, 주홍색 등등 붉은 계열로 꽃을 한아름씩 꽂아 드리곤 했다. 한데 올해는 갑자기 흰색꽃으로 하고 싶었다. 흰색과 노란색으로 화사하게 한 묶음을 만들어 꽂아드렸다. 산중턱에 위치한 영탑이 환하게 빛나 보였고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라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었다. 추석에 아들과 함께 갔더니 그 화사함은 온데간데없고 칙칙하고 어두침침했다. 비가 내리고 흙탕물이 잔뜩 튀어서 하얀색은 흙빛으로 칙칙하고 초라했다. 그 얘기를 단골 가게에 했더니 천이 아닌 비닐 같은 꽃잎의 수국을 권해준다. 단골이 좋다. 오 년 이상 한 집만 가니 그녀의 기억 속에 아버지의 영탑이 그려지나 보다. 분홍색과 연보라색 수국 한 묶음을 포장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막걸리 한 잔을 올렸다. 깔끔한 아버지가 매일 집 앞을 쓸고 닦고 했는데 당신 탑에 거미줄이 주렁주렁 늘어졌다. 간 김에 솔을 들고 영탑을 구석구석 쓸었다. 늘 지켜보던 아버지에게 또 부탁을 한다. 나를, 손자를 지켜봐 달라고. 그동안 잘 계셨냐는 말도 없이 부탁부터 한다. 생전이나 돌아가신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당신은 늘 나를 지켜봤고 힘들 때 가만히 내 정신을 잡아주곤 하셨다. 오히려 생전에는 쑥스러워 제대로 말을 못 했는데 이제는 가끔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나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대놓고 도와달라는 말도 한다. 영탑 주변에 막걸리를 잔뜩 뿌려놓고 싶은데 멧돼지가 내려와 땅을 판대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멀리 산 위로 안개가 피어오른다. 저 멀리 산은 그대로 먹빛이다. 산수화에 나오는 먹빛이 예전에는 믿기지 않았다. 스물아홉의 어느 초겨울 새벽에 우연히 지나면서 본 강원도 산자락은 산수화 그대로였다. 그릴 게 먹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나 혼자 산수화에 대해 단정 지었는데 사실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 새벽에 눈앞에 펼쳐진 산수화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았다. 눈 가리고 귀 가리고 얼마나 많은 편견을 내 안에 끌어안고 살았을까? 이십 대 말에 느꼈던 먹빛이 떠오른다. 저 멀리 산이 한순간에 쭉 당겨진 그날 아침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조급했던 시간은 갔고 나는 느긋해졌다. 삶은 이어졌고 나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살고자 했던 삶에서 벗어났고 꿈꾸었던 삶과는 달라졌다. 하지만 나는 오롯하게 남아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초조했던 때와 달리 막연함에 놓일 때도 있으며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경험이 여유를 만들기도 한다. 저 안개가 피어오르면 산은 또 모습을 달리하겠지. 짙은 가을을 보여줄 것이고 다른 계절을 마련할 것이다. 내 앞에 놓인 길에 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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