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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

by 송나영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나이트클럽이 궁금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고 동기들을 졸라서 신촌에 있는 '우산속'을 갔다. 우리는 입구에서 나 때문에 쫓겨났다. 내가 친구들보다 한 살이 어렸다. 입구에서 출입을 거르던 덩치가 큰 남자는 같이 간 남자 동기의 등짝을 때리면서 왜 애를 데리고 왔냐고 했다. 내가 남들보다 좀 어려 보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자랑스럽게 내민 주민등록증 때문에 더 맞았다. 한 해가 어려서 미성년이었던 거다. 예전에는 전년도 3월 1일부터 후년 2월 28일까지 학생을 입학시켰다. 나처럼 한 살 어린 아이들도 학교에 들어가서 똘똘한 아이들 틈에 어리바리한 한 해 늦은 아이들이 있었던 거다. 음악소리가 쿵쾅거리는 저 흥분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늙어 보여야 했다. 머리를 파마를 하고 나이트클럽 한 번 가보는 것이 간절했다. 종로에 있는 국일관이라는 곳이었는지 아니면 그 당시에 각 학과에서 나이트클럽이나 카페 등을 하루 빌려서 친구들에게 티켓을 팔아서 놀았던 카니발 장소였던 이태원에 있던 나이트클럽을 먼저 갔는지 기억이 흐리다. 드디어 나이트클럽에 입성했다. 그 짜릿한 흥분에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스피커에서 쾅쾅 울리는 음악소리에 온몸이 들썩거리면 춤도 잘 못 추면서 흔들어댔다.

무용선생이 포기한 나였는데 나이트클럽에서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건 너무 재밌었다. 그냥 신나는 거였다. 우리는 교련과 체육과 무용을 배웠었다. 체육 말고 무용까지 배워서 곤욕을 치렀다. 체육은 자신이 있는데 도무지 무용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에어로빅의 순서를 외우는 건 전 교과를 다 외우는 것보다 힘이 들었다. 첫 무용실기 시험을 치르기 전날 나는 밤새워 순서를 외우고 또 외웠다. 다음날 시험을 치르면서 번호 순서대로 5명의 아이들이 나란히 정렬을 했다. 까먹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동작을 했지만 옆으로 돌아서는 순간 내 뒷 번호의 아이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고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머리가 하얗게 백지로 변했다. 뒷 번호 아이가 허둥대는 걸 보자 다음 동작이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앞의 아이랑 뒤의 아이와 자꾸 얼굴이 마주쳤다. 무용선생은 뒷 번호의 아이와 나를 노려보면서 "놀고들 있네"라는 말을 하면서 한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 학년 때 춤바람이 단단히 났었다. 나이트클럽에 가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뜻이 맞는 아이들과 나이트클럽에 가곤 했다. 여대에 다녔던 친구들의 나이트클럽 무용담을 듣기도 했다. 매일 가다시피 하는 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동창의 대학동기 5명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이트클럽에 출근도장을 찍었었다. 생물학과를 다녔던 그 친구들은 춤에 열중하더니 그중 한 명은 에어로빅 강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춤이 본업이 되고 전공이 취미생활이 되었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몇몇 부류가 있었다. 스피커 앞에서만 춤추는 아이가 있었고 꼭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추는 사람도 있었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은 한눈에 보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진짜 춤을 못 추는 사람도 한눈에 보였다. 희한하게도 그런 애들은 뒤로 꺾기를 하든지 온몸을 젖혀가면서 춤을 춰서 시선을 집중시키곤 했다. 일어났다 앉았다 부산스러운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리듬에 몸을 맡기지만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차력쇼에 가까운 관절 꺾기 기술을 선보인다. 나이트클럽은 디스코며 빠른 템포의 음악이 몇 곡 흘러나오면 부르스타임이 있었다. 남녀공학을 다녔던 나는 사귀던 남자 친구와 췄지만 남자애들끼리 추기도 했다. 온몸을 붙이고 추는 남미의 춤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왜 그때 다른 남자친구들과 추지 않았을까? 동기 남자애들도 춤추자고 했던 거 같지는 않다. 블루스 추는 게 뭐가 어때서 그때는 고루한 생각에 즐기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닌데 어설픈 유교적 사고방식에 많이 물들어 있었다.

졸업반이 가까워지면서 나이트클럽과 거리가 멀어졌고 어떻게 살 것인지라는 당면 문제에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나이트클럽을 향한 내 애정은 식어갔고 방송 원고를 쓰는 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홍대입구에 널린 클럽으로 발길을 향했다. 클럽은 작은 공간이었고 술 마시다 기분이 나면 자연스럽게 춤을 추곤 하는 곳이었다. 프로덕션에서 일감을 받아 종종 글을 쓰다가 친해졌던 직원들과 함께 즐기러 갔던 곳이 강남의 나이트클럽이었다. 그 당시에도 강남에는 유명한 나이트클럽이 많았다. 신나게 흔들며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좋은 장소였다. 내 춤바람 생애의 마지막은 남산의 힐튼호텔에 있던 파라오였다. 그곳은 신이 나지 않았다. 장신의 모델 같은 이쁘고 멋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내 키는 그들 허리를 조금 넘기고 가슴에 닿을 듯했다. 아무리 신나게 놀려고 해도 장신의 숲에서 기가 죽었다. 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장신의 숲이 이루는 색색깔의 물결을 TV를 보듯 지켜보는 걸로 끝이 났다.

'버닝썬 사건'이 일어났었다. 신문 기사를 찾아 읽을수록 돈과 권력과 마약이 점철된 곳이 클럽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클럽이 어둠의 세상이 된 거 같다. 데이트 마약이라는 물뽕이라든지 마약사건을 접하다 보면 강남의 클럽이 종종 연루되곤 한다. 아직도 강남의 클럽에서는 물뽕이라는 데이트 성폭행에 사용되는 마약이 쓰인다고 한다. 누구나 갈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클럽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박진영은 이태원 클럽에서 춤추는 걸 즐기다 JYP의 수장이 됐고 양현석도 클럽에서 춤추고 즐기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가수가 되고 댄서가 돼 YG 엔터테인먼트를 세우지 않았는가? 한 때 클럽을 무척 좋아했던 나는 이제 오히려 아들이 클럽에 갈까 두렵기까지 하다. 아들은 나와 달리 어느 유전자가 발현을 했는지 춤을 정말 잘 춘다. 춤 잘 추는 아들은 군대에서 선임의 요구에 맞춰 신곡 댄스공연을 자주 했단다. 그런데 아들이 클럽을 즐길까 봐 걱정이 앞선다. 클럽은 하루를 마치고 잠깐 신나게 흔들던 그런 공간이 아닌 것 같다. 세상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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