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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쓰레기통

by 송나영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내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었다. 사는 게 버거우면 나를 붙들고 비난을 곁들인 신세한탄을 했다. 그 짓을 나도 아들에게 했다. 삶의 고단함을 꾹꾹 눌러 담으려다가 실패하고는 느닷없이 아들을 훈계하려 들었다. 끝이 좋을 리가 없다. 갸름해지는 눈과 원망 가득한 눈빛을 되돌려 받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마음이 종지만 해진다.

아들을 군대 보내고 홀로 남은 집에서 처음 느끼는 외로움이었다. 가족이 있어도 외로울 때가 더러 있지만 올곳이 혼자 남겨진 느낌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들을 광주에 있는 훈련소에 데려다주던 날도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가르치러 갔다. 일이 없었다면 홀로 집에서 미안함과 안쓰러움과 쓸쓸함과 온갖 감정에 휘말려 쓰러져 있을 거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을 거다. 아들이 집에 있다고 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지도 않았고, 살갑게 대해 주지도 못했고 아들은 아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조용히 지냈건만 아들이 없는 집은 온기가 사라진 채 텅 비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삭일 때가 없었다. 일부러 바쁘게 지내려고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혼자 남겨진 감정에 쓸쓸함과 울적함을 보태기 싫어서 돌아다닐 일을 찾았다. 그것도 지칠 즈음에 시간을 보낼 거리가 필요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울적해지면 책도,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유튜브 영상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영부영 자정을 넘겨 시간을 보내다가 브런치에 글 쓸 생각을 했다.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든 곳이 브런치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울컥울컥 올라오는 말들을 어디 쏟아 둘 데가 없었다. 아버지의 영탑을 찾아가다가, 아들을 찾아가다가 떠오른 머릿속을 맴도는 말도 담아둘 데가 없었다. 우울한 말들과 내 안에 차고 넘치는 원망과 분노의 말들을 어디 쏟아 뱉을 데가 필요했다.

꾸역꾸역 넘기고 삼키고 꿀렁거리며 올라오는 말을 다시 삼키고 살았다. 말인지 발인지 기가 막힌 말을 대꾸하기 싫어 따지지 않고 넘겼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지인들과 전화하기가 싫다. 처진 기분을 올리려고 전화를 했다가 오히려 더 기분 나빠져서 끊을 때가 많았다. 내 탓인 거다. 상대는 알지 못하는데 나는 위로를 받으려는 기대를 한 거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서 아들은 군대 가서 혼자 있고, 그날이 그날이고, 주식투자는 다 떨어져서 엉망이라고 했더니 내 주변은 왜 다 잘 안 되는 사람만 있냐는 말을 들었다. 졸지에 재수가 없는 사람이 됐다.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그러다 진짜 내 기분이 좋을 때만 전화하게 된다. 내가 상대의 말을 감당할 수 있을 때만 통화를 하게 된다.

우울감이 심해지면 상대의 말에 쉽게 섭섭해진다. 우울하다고 하면 상대는 온 마음을 다 해서 병원과 심리치료 등 여러 방법을 제시하지만 순식간에 기가 달린다. 그게 아니라는 말과 내 상태에 대한 변명을 계속 늘어놓는다. 왜 내가 이런 변명을 해야 하지? 나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해야만 되는 건가? 대화가 피곤해지고 정신적으로 시달린 느낌이다. 변명을 하게 만드는 말은 나쁜 말이다. 이해는 전혀 할 생각이 없고 상대를 난도질하는 말인 것이다. 상대는 이해할 마음보다 분석하려들기에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인 거다. 아무 말없이 들어주고 끄덕여주기만 해도 충분한 일을 순식간에 메스를 들고 여기저기 갈라서 쑤셔댄다. 입이 저절로 다물어지고 말은 짧아지게 마련이다.

내 마음을 꺼내서 빨기로 했다. 햇볕에 널기로 한 거다. 아팠던 기억과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펼쳐내기로 했다. 두 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일도 끄집어냈다. 퍼 낼 수록 더 많이 고이는 우물물처럼 말이 계속 나왔다. 내 안에 웅숭깊은 동굴이 있나 보다. 괴로웠던 기억을 꺼내서 펼쳐놓으면 울컥울컥 마음이 요동을 쳤지만 계속 끌어올리다 보니 어느새 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이 떠오르면 그걸 쓰려고 아팠던 기억을 이리저리 휘둘러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시커멓게 찌들었던 때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마음도 가라앉았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잊었던 짜릿함도 떠올랐다. 삼십 대에는 밤새 원고를 써서 탈고를 하면 내가 살아있는 거 같았다. 숱한 공모전에 뚝뚝 떨어지면서도 원고마감시간에 맞춰 써냈던 원고들이 나를 숨 쉬게 했었다. 그때는 쌓아둔 감정을 쏟을 일이 없었다. 없는 걸 만들어내고 쥐어 짜내기 바쁜 시간이었다.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과 사람들과의 관계는 내 마음의 우물만으로 충분했다. 내 우물만 출렁거리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사오십 대를 살면서 만나는 관계와 경험은 내가 삭일 여유도 없이 휘몰아쳤다. 폭풍우를 만나서 난파되고 모래사장에 휩쓸려 온 뒤에야 내가 보였다.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걸린다. 찌들어서 뒤틀린 감정들을 쏟아내길 연거푸 하다 보니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 길게 숨 쉬는 시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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