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나영 Nov 18. 2024

수고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의 수험생과 수험생 학부모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능이 끝났다. 지난 14일에 수능이 실시됐다. 매해 실시되는 수능날은 희한하게 날씨가 추웠다. 포근하다가도 수능날만 되면 추워진다고 예전에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올해는 날이 춥지 않다. 아침부터 어둑어둑하니 너무 졸린 날씨라 수험생들이 걱정이 됐다. 

  우리는 모두 수험생과 한 마음이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오십 중반을 넘긴 나도 학력고사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의 붉은 노을을 기억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모습을 기억한다. 시험이 다 끝나고 창문을 열고 운동장을 내려다본 순간 초겨울 붉게 물든 노을이 트럼펫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노을이 짙어지는 그 시간 그 자리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을 보면서 울컥 눈물이 솟구쳤었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 일 년을 0시간 수업부터 야자시간까지 밤 11시에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마음 졸이며 살았었는데 홀가분한 마음보다 고작 이 하루를 위해서 이렇게 고생한 건가 싶어서 나는 허무했었다. 고3을 병치레로 시작해서 무기력하게 보냈고 학력고사 전날에도 감기에 걸려 병원을 다녀와서 일찍 잠을 잤었다. 열심히 노력하지도 최선을 다 하지도 않은 채 고3을 보냈었는데 까닭도 없이 허탈했다. 

  아들을 기다린 날도 추웠다. 시동을 끈 채 추운 차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들을 기다렸었다. 5시가 넘어 한 떼거리의 아이들이 몰려나오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아들은 천천히 친구들과 함께 나왔다. 그 멀리에서도 한눈에 아들이 보여서 아직 외국어 시험이 남았는데 주책없이 아들을 불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들이 뛰어왔다. 시험을 본 아들의 상기된 표정에 눈물이 솟았었다.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고생했다, 수고했다 이 말만 되뇌었었다. 이 하루를 위해 아들도 몇 년의 수고를 했다. 

  재수생, 삼수생, 심지어 사수 오수도 늘어난다. 지인의 조카는 군대를 다녀와 다시 수능을 치렀다. 삼수를 하고 지방 대학을 들어갔지만 다시 편입을 해서 서울 지역의 대학을 들어갔다가 또다시 의대 진학을 하기 위해 수능을 준비하던 아이도 있다. 명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또 수능 준비를 한다. 편입도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보다 무슨 이름표를 달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대학의 브랜드가 중요해진 모양이다. 

  뉴스를 장식하는 잘난 사람들은 명문대 출신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천박한 교양과 삶의 모습을 보면서 명문대학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요즘 많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 그것을 대놓고 얘기하고 자랑하지만 그 학벌에 걸맞은 품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씁쓸하다. 누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누가  어느 만큼 더 좋은 대학을 나왔는지 자랑을 하고 학벌 경쟁을 시키지만 정작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정치인들이 소위 스카이를 나온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잘난 사람들의 한심한 작태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수능은 시작일뿐이다. 새로운 관문을 통과할 뿐이다. 시작이 쳐졌다고 해서 인생이 뒤쳐지는 게 아니란 걸 우리는 세상을 통해 배운다. 열심히 노력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입에 성공했지만 뜻대로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삶에 힘겨워할 때도 있고 초라하게 이십 대의 문을 열었지만 점점 더 빛나는 삶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에 주목하는 세상에 휘둘리면 의기소침해지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만난다. 내 삶의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우리는 안다.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기의 세상을 펼치는 사람은 진정 삶의 승리자다. 나답게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꿋꿋하게 세상과 맞서는 도전이 청춘이다. 

작가의 이전글 용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