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하면 용서가 된다고 말한다. 내가 낳아 내 손으로 키운 자식 속도 도무지 모르겠는데 이해가 될까? 심지어 나 자신조차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데면데면한 관계의 사람한테 친절하기는 쉽다. 이해할 수도 있다.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으면 이해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지만 적절한 관심이거나 무관심은 오히려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 하지만 오히려 나와 같이 살아가는 가족과의 관계는 이해는커녕 점점 오리무중일 때가 있다. 지나친 간섭은 이해를 가장한 집착일 수도 있다. 쓸데없는 간섭으로 바뀌는 걸 깨닫지 못한다. 결혼을 하고 남과 사는 생활을 버티려고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썼지만 환멸만 남았다.
남편은 전처와 끝나지 않은 첫 애에 대한 양육권 싸움을 나와 결혼하고도 했다. 나에 대한 배려는 물론 없다. 오히려 전처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앙금을 나한테 퍼부었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면서 자기가 애한테 잘 못 해줘 마음 아프다고 애만 잘 키워달라는 애 딸린 이혼남은 결혼을 하고 애를 잊었다.
습관은 무섭다. 가족에게 헌신적인 아버지를 본 적도 없고, 자기 뜻대로 자식의 앞길을 결정하는 아버지와 시시콜콜 자식들의 흉을 전달하는 어머니 밑에서 그는 자랐다. 대화보다는 폭력이 먼저인 집에서 그는 성장했다. 밥 먹다 밥상이 날아가는, 그 상에 천장이 찍혀 있는 집에서 그는 자랐다. 결혼하기 전에 그 남자의 가정을 살펴보지 않고 무턱대고 좋은 선배라고 믿었던 것이 발등을 찍었다. 내가 힘들면 어디든 달려와주던 그 선배가 고마워서 무작정 믿었다. 그 남자가 가정에서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내가 오만했다. 결혼을 너무 우습게 본 거다. 결혼을 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에게 연애만 했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또 만약에 내가 결혼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선배네 집에 왔더라면 이 결혼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했다.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내 결혼은 무덤이었을 거다.
결혼과 동시에 초등학생 입학생 부모이자 신생아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던 나는 힘에 부쳤다. 웃음은 사라졌다. 거짓말이 일상이고 밥 먹기를 싫어하는 아이와 씨름을 해야 했다. 결혼 전에 식당에서 할머니 곁에 드러누워 있던 아이는 내 눈치만 살살 살폈었다. 나는 뒤늦게 아이 버릇을 잡겠다고 훈육인지 학대인지 그 경계를 오갔다. 늘 찌푸린 얼굴에 피곤에 지쳐있는 나를 보고 아들은 웃지 않았다. 보행기를 타고 세상 다 산 늙은이 같은 아이의 표정이 사진에 찍힌 적도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기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가끔 보면서 이렇게 이쁜 아이였는데 왜 그렇게 아끼지 못했는지 후회가 많다. 그 속상한 마음을 큰 애한테 퍼붓기도 했다. 이래 저래 나는 못난 엄마였다.
나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읽었던 책이 송봉모 신부님의 '용서'라는 책이었다. 용서는 쉽지 않다고 했다. 타인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이 나를 잡아끌었다. 읽은 지가 이십여 년이 넘은 그 책을 제대로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다. 고해성사를 하면서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한단다. 남을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신을 용서하는 것은 더 힘들다고 했던 거 같다. 한 해가 갈수록 아들한테 잘못했던 일만 떠오르고 미안한 마음만 새겨진다. 왜 나는 그렇게 모질게 굴었을까? 다시 아들이 갓난아이 시절로 돌아가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왜 그렇게 쓸데없이 애를 혼내고 별 거 아닌 일로 애를 쥐 잡듯이 몰았을까? 전화 안 받았다고 애한테 그렇게 성을 낼 일은 아닌데 말이다. 내가 살기 너무 버거워서 그랬다고 한다면 아들은 이해해 줄까? 나도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는데 아들한테 용서를 바라는 나 자신이 우습다.
남편은 이제 용서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남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묻어두면 된다. 하지만 결혼에서 이혼까지 엄마에게 들었던 말들은 칼처럼 남아 나를 찔러댄다. 엄마를 이해할 수도 없고 나는 엄마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엄마의 그 독하고 모진 말들이 용서가 안 된다. 자식의 안위보다 당신의 체면을 더 먼저 챙겼던 엄마를 용서할 수가 없다. 남편의 세 번째 폭력을 엄마한테 전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끝까지 이혼하지 말고 살아서 복수하라고 했다. 힘이 들면 친정으로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친정으로 올까 봐 두려워했다. 애 딸린 홀아비랑 결혼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엄마는 나한테 도대체 그 선배가 얼마나 잘해주냐고 빈정거렸다. 그렇게 잘해서 결혼했냐고 도대체 얼마나 사랑해서 결혼한 거냐고 이혼을 결심한 나에게 악을 썼었다. 엄마의 카톡은 무시해 버린다. 미움이 이해를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