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믿고 있다

by 헤롤드 용

불안은 감정이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불안해지면 이렇게 말한다.

“요즘 내가 좀 예민해.”

“마음이 약해진 것 같아.”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문제는 불안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불안이 말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이라는 걸.


불안은 늘 말을 건다.

“지금 이 상태는 좀 위험해.”

“뭔가 빨리 해야 할 것 같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우리는 이 목소리를

그냥 생각이라고,

내 판단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불안이 오면

곧장 움직이려 든다.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모두들 자기 세계를 잘 꾸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급해지고 숨이 짧아진다.

하지만 이 불안은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라기보다,

연결에 예민해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두통이 병이 아니라 몸의 신호이듯,

이 불안도 삶이 틀렸다는 진단은 아니다.


불안을 믿는다는 건

불안을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불안을 믿는다는 건

이 생각과 연결된다.

“이 불안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한다.”

마치 두통이 오자마자

“아, 또 두통이네. 약부터 먹어야겠다” 하고

이유는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냥 없애려 드는 것처럼.

불안도 그렇게 다룬다.

왜 생겼는지 묻기 전에

빨리 눌러야 할 문제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두통은 대부분

약을 먹기 전에

몸이 뭘 말하고 있는지부터

들어야 하는 신호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삶이 무너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속도나 방향이 조금 어긋났다는 표시에 가깝다.


문제는

그 신호를 병으로 착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불안이 있으면 안 된다고 믿는 순간,

불안은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고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다룰수록

불안은 더 자주 돌아온다.


불안을 믿지 않는다는 건

불안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상태다.

“아, 지금 좀 불안하구나.”

“이 불안이 뭘 말하려는 걸까?”

“이 생각은 사실일까, 아니면 반응일까?”

이 질문 사이에

아주 작은 여유가 생긴다.

그 틈이

숨 쉴 자리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질 필요도 없다.

다만

불안이 방향을 결정하게 두지 않는 것,

그게 삶을 안착시키는 기술이다.

불안을 믿지 않는다는 건

불안을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불안은 병이 아니다.

불안은 두통이다.

그리고 두통이 그렇듯,

없애려 할수록 남고

의미를 들여다볼 때

조용해진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믿지 않으면 된다.





사진: UnsplashReinhart Ju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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