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혼란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혼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혼란과 함께 찾아오는 불안이다.
방향을 잃은 것 같은 느낌.
판단이 늦어지고 있다는 초조함.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혼란이 생각의 상태라면,
불안은 그 혼란이 몸으로 전해질 때의 감각이다.
불안해지면 우리는 서두른다.
빨리 이해하고 싶고,
빨리 이유를 붙이고 싶고,
빨리 편안해지고 싶어진다.
그래서 혼란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이 상태를 끝내는 것이다.
설명을 찾고,
의미를 만들고,
교훈으로 정리한다.
하지만 혼란과 불안은
대개 그 반대의 메시지를 들고 온다.
아직 닫을 때가 아니라는 신호.
혼란은
의미가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불안도
내가 약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이 둘은
의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때
항상 함께 나타난다.
이전의 기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기존의 설명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할 때,
삶은 우리를 잠시 애매한 자리에 세운다.
그 애매함이
머리에서는 혼란으로,
몸에서는 불안으로 느껴진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혼란과 불안을
너무 빨리 닫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지도가 나타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혼란과 불안을 서둘러 끝내면
우리는 새로운 지도를 얻는 대신
익숙했던 옛 지도를 다시 펼치게 된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내린 빠른 결론은
대개 과거에 이미 써봤던 방식이다.
익숙하고,
편안하고,
설명하기 쉬운 길.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삶의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빨리 편안해지는 삶이
나쁜 삶은 아니다.
다만 모든 상황에서
그 방식이 맞지는 않는다.
어떤 불안은
제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통과해야 할 감각이다.
불안을 통과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삶은 그대로 계속된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결정도 내린다.
다만 한 가지만 하지 않는다.
아직 이해되지 않은 것을
억지로 이해한 척하지 않는 것.
혼란과 불안의 시간은
겉으로 보면 공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아주 많은 일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고,
자아와 사건이 분리되고,
이전의 기준이 해체된다.
의미는
이 해체가 끝난 뒤에야 도착한다.
그래서 늦다.
그래서 깊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해야 할까.”
하지만 질문은
이렇게 바뀌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내가 너무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은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지도를 찾고 있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혼란을 빨리 닫는 능력은
새로운 길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옛 길로 돌아가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혼란과 불안이
당신을 멈추게 하지 않고
계속 걷게 만든다면,
그건 이미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