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싸잡아 죽였기 때문에
눈앞의 모든 걸 죽여 없애는 방법으로 번식을 크게 이룬 생물종이 있다. 자신들끼리 힘을 모아 고유한 사회를 이루고, 다른 생물종은 멸종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영토를 넓혀갔다.
수만 년이 지난 지금.
지구상의 모든 땅을 차지한 그들은 이제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는 행위에서 벗어나 연약하고 소수가 된 생물을 보호하고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동정과 애정 그 사이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훌륭한 품성을 지니게 된 것일까.
사실은 아주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오히려 동족에게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굳이 살아야 한다거나 생존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앞 길을 막는 걸리적거림 정도로 바라보았다.
수만 년에 걸쳐 자연을 싸잡아 죽여왔던 인간이, 이제는 그 시선이 사람을 향한다.
눈앞의 풀떼기만도 못한, 사람
무성한 밀림 속 한 사람이 있다. 그의 행동에서 우리는 어떠한 이질감도 느끼지 못한다. 눈앞을 가로막는 풀을 날카로운 칼로 베어버리며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말이다.
사람은 원래 그런 품성의 생물종이다.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치워버리는 종족.
그리고 지구에는 무성한 밀림만큼이나 많아진 사람이 있다. 어딜 가나 발에 치일 정도로. 길을 걷다 '내 시야를 가로막는 이 것을 베어야겠네.' 하는 정도로 인식할 것이다.
잔인한 품성으로 번성했던 인간종은 이제 소멸종의 위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