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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신경학 강의, '의학 스케치'

일 년에 벌써 15권(2/15)

by 바다남 Jan 13. 2025

"MEDICAL SKETCH"


신경학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귀한 책을 만났다.



책의 시작이 우습고 귀엽다. '안승철 글. 그림'.

현직 의대 교수가 직접 쓰고, 그린 만화책이다.


어려운 의학 내용으로 적절한 만화가를 섭외하는데 실패했고, 볼품없는 본인의 그림 실력에 돈키호테 같은 출판사를 만나고 나서야 책이 세상에 나오다니.


교양 신경학을 펴내려는 그의 뜻을 출판사는 어떤 생각으로 도왔을까.

분명 밀리언셀러를 기대하진 않았겠다.


하지만, '만화책'에 '작화'가 엉망이어도 저자가 말하려는 콘텐츠는 일반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정보의 격차를 줄이려는 소통을 향한 시도였기에 가능했지 않을까.


찰스 다윈이 등장해 진화론적 감정 이론이 파장을 일으키고, 칸트가 감각에 대한 발언이 영향을 끼치는 등.

일반 대중에게 철학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이들이 의학 서적에 등장하다니.


'재밌다.'


의학의 역사의 일부를 보여준다. 뇌 과학 유튜브가 인기를 얻는 요즘.

뇌의 지위부터 시작해 시대의 종교적 영향력 아래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얄팍한지 배운다.

모든 믿음은 시대상황적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때의 시대상황에 맞게 과거 믿음을 재해석하고, 재평가한다.


그래서였을까?

신경학은 "나"가 살면서 받아들이는 자극과 정보, 생각하는 어떠함에 대한 '제삼자적 시선'을 확보시켜 준다.


빨간색으로 해석하고 인식하는 나의 시신경이 있다는 사실은, 해당 파장을 파란색으로 해석하는 제3의 존재의 시신경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믿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동물이라서.

이를 알고 있는 똑똑한 사람이 의도를 갖고 사기를 칠 때, 당할 수밖에 없는 생리학적 이유를 학습한다.

피해자가 겪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라는 감정까지 전부 사전 설계된 것이라는 현실 감각을 터득한다.


의사들이 '사람을 과연 사람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지구상의 한 동물'이라는 것.

이를 인식하는 삶과 아닌 삶의 격차는 세상을 30년 남짓 살면서 얻은 경험적 사례들로도 충분하다.


1. 찰스 다윈은 진화론적 이론상 '감정 표현은 종족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했다.

이 말은 내게 새로운 가설로 다가왔다.


"내 생존을 위협하지 못하는 자극에 대해서는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내 생존이란, 나를 형성하는 요소, 나의 정체성, 내가 이루고 싶은 기대적 욕망일 수 있다.

(증명하고 싶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들 말이다.)

그리고 주변인, 가족, 일에서의 성과 등이 내 생존을 위협하지 못하는 자극이 된다면.

감정적인 실수를 유발하지 않는 이성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케 했다.


내가 설정하는 생존적 조건값에 주변인 또는 가족을 배제시킨다면, 나의 감정적 실수는 줄고 이성적 태도로 삶을 가꾸어나갈 수 있는 나이스한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2. 감각 발달에는 결정적 시기가 존재한다.

뇌의 발달시기가 존재하고, 환경적 교육에 따라 '문이 닫히는 시기'를 늦출 수 있고, 이 시기를 놓치면 학습이 거의 불가능하다.


노인이 더 이상 바뀌지 않는 것은 생리학적으로 사실인 것. 개인이 낼 수 있는 퍼포먼스도 경험적 발달 환경에 따라 생리학적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쁜 영향을 주는 환경을 물리적으로 제거해야만 뇌의 시냅스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시작된다는 것.


이는 나의 전제론적 가설을 뒤엎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나는 살면서 항상 배움과 습득이 빨랐는데, 그 배경이 '머리가 좋아서'라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머리가 좋은 사람'은 결과론적 현상이고,

실은 나 자신이 '학습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가설을 새롭게 제시한다.


나 자신의 환경적 조건(시기, 외부자극의 세기, 유전적, 자극의 빈도)이 "학습의 문"을 열어두게 했다는 것.


이 가설은 나 자신이 계속해서 낯선 조건들에 노출되어 배우고 적응해야만 하는 반복이,

삶을 가꾸어나가는 방향과 결과에 있어서 매우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함을 시사한다.

동시에 '머리가 (적당히) 뛰어나다'라는 가능성의 제한이 풀리고, 배움과 흡수를 통해 결국 다시 조합결과물을 뱉어내는 어떠한 현상이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을 품게 한다.


생리학적으로 말이다.


-

2025.01.13

안승철 단국대 의대교수가 펴낸 교양 의학서적.

나의 책 읽기에 <교양 의학>이라는 카테고리를 생성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항시 의학적 사고방식에 노출된 삶은 사람다움을 유지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강렬한 느낌을 느꼈다.


또, 안승철 교수라는 한 사람에게도 호기심이 생겨 그의 저서를 검색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도 발견했는데, 저자를 알면 그가 내놓은 작품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니 기대된다.


책을 읽고 나면 집안에 쌓여 처치곤란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읽고, 이후 적절한 인물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는 새로운 분류도 존재하고 가능함을 이제 내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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