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의 두 번째 출근길
하루 종일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바빴다
정신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온통 일로만 채워진 하루였다
퇴근하면서, 부랴부랴 아이들이 부탁했던
연체된 책을 반납함에 밀어 넣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직장맘이 집에 오려면 통과해야 하는 필수관문,
저녁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퇴근하기 전에,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이거 싱싱해서 맛있어, 어제 밭에서 따온 거야"라며 건넨 봉지 안으로 상추가 보였다
'이걸 어떻게 먹지? 고기를 구워야 되나?'
상추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침에 열었던 냉장고 안에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김밥용 햄이 생각났다
'그래! 김밥 싸면 되겠다'
어려운 문제를 맞힌 듯한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김밥에 상추는 기름에 볶은 재료들 사이에서
속을 편하게도 해주지만,
상추를 안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나만의 꼼수이기도 하다
김밥 안에 말아놓으면,
시금치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배고플 아이들 생각에
부리나케 집에 돌아왔다.
시계가 7시를 넘어간다
마음이 급하니 옷도 못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 오자마자 또 뭐 해?"
중3 아들의 한마디에
고단한 하루가 녹아내린다
며칠에 한마디 할까 말까 하던 녀석이었는데...
사춘기를 일찍 겪더니 조금씩 철이 드는 게 보인다
"그러게 말이야,
종일 바빴는데 집에 와서 또 뭘 하네" 하고는
후다닥―
압력솥에 밥을 안치고
국에 불을 켠 뒤 김밥 재료들을 볶는다
양손 볶기 신공 정도는,
요리에 관심 있는 엄마라면 어렵지 않을 듯하다
기름에 볶으면 좋다는 당근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걀은 넉넉하게 만들어
쟁반 위에 쌓아두었다
힘을 줘서 말아야 하는 김밥이라
조금 미안하지만
남편이 올 시간에 맞춰서 재료들을 준비했다
수북이 쌓인 재료 앞에서
아빠가 힘껏 말아주는 김밥...
남편은 자상한 성격은 아니지만
일부러라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도 남이 싸주는 김밥 좀 먹고 싶어" 라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아빠가 고소한 향기를 풍기며
김밥을 말고 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먹지 않았는데도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그럼 당신이 김밥 재료 만들어 줘요.
내가 말기 파트 할 테니"
큰아들을 담당하고 있는 남편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집은 먹성이 좋기로 소문난 가족들이니
기다란 김밥을 두세 토막으로 잘라 두었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한 덩어리를 잡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식구들의 배가 어느 정도 찰 때까지는
손을 빠르게 움직여도 김밥이 쌓이지 않는다
바쁘게 말아야 하니,
남편이 투덜대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는
아무리 산해진미라고 해도 먹지 않고
그대로 식탁 옆에 눕고만 싶다
하지만,
이 시간이 아니면
언제 식구들과 마주 앉을 수 있을까?
옆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한 줄을 먹었다
-힘껏 줄였지만 밥의 양은 다른 김밥의 1.5배다
한 줄을 더 내미는 남편에게
"그만 먹어야 하는데..." 하며 받아 든다
"아빠! 난 햄을 두 개 넣고, 야채는 조금만 주세요"
외치는 큰아이가 아빠와 실랑이를 했다
솥에 가득했던 밥들이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루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지만
아마 이런 순간을 행복이라 부르는 거겠지
어제도 내 것이 아니고,
내일도 그러하니,
오롯이 내가 손 내밀면 닿는
오늘의 행복을 선택하고 싶다
아무래도 설거지는
내일 아침에게 부탁해야겠다
이미지 제공: 한나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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