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집 매매 이야기
지난가을, 6년쯤 살았던 정들었던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우리 집이 학원가와는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다.
그러다 보니 여느 아이들이 '몇 개씩 다닌다'라고 하는, 학원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다
학원 차 순환노선 안에 우리 동네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들어오는 학원 차가 있었지만, 아이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학원이 아니었다
친한 지인의 아는 사람, 아이들 친구가 다니는 곳...
물어물어 어렵게 과외 선생님을 알아내면, 수업은 이미 다른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동네가 공단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출퇴근 차량이 많아서,
실수로라도 그 시간에 합류했다가는 오랜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다른 동네의 과외선생님까지 알아봤지만, 우리 동네로 오시지 않았다
학교로 가는 버스의 배차간격도 길었다
이미 앞 단지의 아이들이 많이 타고 있어서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다
한참 사춘기를 힘겹게 보내는 큰아이를, 몇 년간
태워주다가 지칠 대로 지쳐갔다...
더는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아이와의 관계, 교육, 모두 다 놓치겠다! 이사 나가자는 결론에 닿았다
몇 년 전부터 같은 단지에 아이들이
하나, 둘 이사를 하고 있어서
안 나가는 게 더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집을 내놓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전국의 집값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제 집을 보러 오겠다는 전화가 올지 몰랐다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면, 하는 말은 비슷하다
"10분 뒤쯤 방문해도 될까요?"
어투는 예의 있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10분은
단지 안에 부동산 실장이
매수 대상자들에게, 아파트의 자랑을 하면서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면
밖에 있다가도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10분 대기조를 서느라 삶이 피폐해졌다
오는 시간은 언제나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토요일 오전에 긴장을 풀고 늦잠이 들었을 때
1월 1일 새해 벽두에도
월요일 오전에 오는 사람까지
집을 보러 온다고 전화를 건
반가운 무뢰배들이 벨을 누른다
무례함이 느껴지는 날일수록
'피치 못한 사정이 있거나 집을 꼭 살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6년 넘게 정들고 손때 묻히며
살던 우리 집인데...
집을 살 것도 아닌 사람이 와서는,
구조를 둘러보며 흠을 잡을 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집에 들어왔을 때 좋은 첫인상을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집이 빨리 팔리는지 검색하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치우며 공부했다
이 생활의 끝은 어디일까?
그날이 애타게 기다려졌다
어느 날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가 왔다
그런데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집을 둘러봤다
툭 툭 툭, 걸어 들어오더니
"음, 안방은 여기고, 건넌방 있고 화장실 두 개, 적당하네..."
하면서 집 구조를 대략 둘러보고 금세 나간다
'참 신기하게 집을 보는 사람도 다 있네...'
워낙 여러 사람이 집에 다녀갔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좋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뒤에 '계약을 하겠다'라며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전세를 끼고
적은 돈으로 집을 사려는 갭 투자자였다
부동산에서는 집값에서 1천5백만 원을 깎아주면,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더니,
5분마다 결정했냐는 연락을 했다)
몇억 원이 넘는 집을 산다는 사람이
계약금을 200만 원 넣었다
'못해도 500만 원은 받아야 할 텐데...' 싶었지만
'거래량이 없는 시기이니 어떻게라도 일을 성사'하려 하나보다
부동산의 몰아치는 진행에 불안함이 있었지만
이사 준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불안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집값이 더 내려갈 것 같았나 보다
적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집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 뒤로 몇 개월 동안
기약 없는 매수자를 기다렸다
주말 오전이었다
거실 창밖의 풍경이 예쁜 우리 집을 보고는
맘에 들어하던 신혼부부가 다녀갔다
"10일 뒤에 다시 보러 올게요"하고 갔는데,
오랜 시간 동안 집을 보여주다 지쳤나 보다
그 말이 의미 있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온다고 한 날이 되자
진짜로 어머니를 모시고 집을 보러 왔다
그리고 매매를 결정하고 돈을 보냈다!
"깎아달라 그러면 사겠다...
고민해 보겠다..."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일 년간 고생한 것에 비하면
정말 약한 정도이다
드디어
믿어지지 않는 매매가 이루어졌다
1년 동안 온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이 풀렸다
오후 4시쯤부터 눈이 감겼다
6시에 '잠시 눈을 붙여야지'
방으로 들어왔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눈을 떴다
'지금은 매매할 때가 아닌가 보다
포기하고
가을쯤 다시 내놓을까?' 생각했는데...
감사하다 참으로 감사하다
한 번의 큰 고비를 넘었다
끝이 있는 어려움은 괜찮다. 참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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