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이 닿는 동안
요즘 나를 놓아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래 눌러두느라 지쳤던 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수년 전 받은 마지막 상담은
5회기까지 무료였다
이번에는
10회기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상담의 시작
첫 상담이니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받고 싶어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 앞에 다가가니
멋쩍은 마스크 너머로
문이 스르륵 열린다
잠시 주춤하며 인사를 건네니
적게 잡더라도
나보다 다섯 살이 어려 보이는 상담가가
안내판을 상담 중으로 돌리며 인사를 했다
순간적으로,
변경이 가능하다면 상담가를 바꾸고 싶었다
조금은 나이가 지긋하고
연륜과 편안함이 묻어나는
사람이기를 기대했으니까
하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몰랐다
다만,
그녀에게서 인간에 대한 한 줄기 따스함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해 보았다
이야기를 꺼내며
상담은 의미 있고 필요하지만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상담자는 말과 표정, 행동을 따라가며
그 안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이에 뒤지지 않게 내담자 역시
자신의 안으로 걸어 들어갈 때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을 지나야 하지만
내가 수년에 한 번씩, 상담실을 찾는 이유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나의 밖으로 나가
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앉아 나를 제대로 안다는 건
맛보지 못한 음식의 맛과
같은 건 아닐까
상담에 애정이 깊은 사람이라도
직업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
보이지 않는 온도를 먼저 읽곤 하는 내게
그녀의 피로가
공기를 타고 손끝에 닿았지만
흘려보내려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나간 상담 주제를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말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녀는 익숙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잠시만요, 선생님
천천히 숨을 쉬어 볼게요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세요
상담실 내부는 어떻게 생겼나요?"
'문제 상황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것보다,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마음이라면
앞으로의 상담이 좀 더 편안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번의 상담을 지나며 알게 된 것은
상담자의 숙련도보다
그가 상담에 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나를 돌아보고, 돌볼 수 있도록 도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앞으로 남아있는 9번의 회기가
의미 있는 시간으로 이어지길
가만히 꿰어본다
50분의 정해진 시간이 되어 가는 듯했다
마지막 물음인 듯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늘 상담받은 소감은 어떠세요?"
"밀린 숙제를 끝낸 것 같아요"
짧은 숨을 내쉬며 대답하자
그녀의 얼굴에 빛이 번졌다
막 긴장이 머물고 간
비 온 뒤햇살을 머금은 잔디빛 웃음이었다
첫 회기를 마무리하며
상담이 지나면 덜 아문 상처를
더듬은 잔흔이 생긴다
바람결에 그것들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Ai에게 물으니
도움이 될 수 있는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섬세한 노래는
흩어진 마음의 파편을
하나씩, 천천히 조각모음해주었다
몇 걸음 앞의 마트에 들어가
멍하니 걸으며 물건을 집었다 놓았다
한 사람을 만나
Ai에게는 없는
체온만큼의 온기를 쬐고 싶었다
한 회기의 숨이 흐르고 나니
숙제를 마친 안도와 약간의 지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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