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의 따뜻함을 붙잡았더라면...

by 지인

<사랑을 사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고등학생의 나는 아직 엄마가 고팠다. 등에 새겨진 채찍의 기억도, 피 흐르는 무릎을 숨겨야 했던 공포도, '이번엔 다를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어 데이트를 신청했다. 엄마와 단둘이 걷고 싶었다. 앞집 아줌마의 동행과 "너 뭐 사달라고 나왔지?"라는 날카로운 첫마디를 예상했다면, 차라리 그 용기를 내지 말 걸 그랬다.
​엄마에게 내가 사고 싶었던 건 옷도, 신발도 아닌 '나를 향한 다정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손을 잡는 대신 앞집 아줌마와 팔짱을 꼈고, 내 진심을 '돈 몇 푼의 요구'로 치부해 버렸다.


​그날 나는 거리의 이방인이었다. 세 명이 걷고 있었지만, 나라는 존재는 투명 인간처럼 증발해 버린 길. 옹알이조차 할 수 없게 굳어버린 입술 뒤로,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내 속을 보이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나의 함묵증은 견고한 성이 되었다.


그때 다정한 데이트를 했더라면, 엄마의 따뜻한 시선을 받고 즐거운 시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면

지금 나는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그 고등학생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지인아, 아무 말 안 해도 돼.
뭐 사달라고 안 해도 돼.
그냥 이렇게 내 품에 가만히 있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엄마 눈치 보느라 입술을 깨물지 않아도 돼.
​그동안 혼자 그 길을 걷느라 얼마나 외로웠니.
네가 흘리지 못한 눈물, 내가 대신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무서운 엄마도, 차가운 앞집 아줌마도 없는
오직 우리 둘만의 시간이야.
​고생했어. 정말 잘 버텼어.
이제부턴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내가 너를 제일 사랑하는 작가가 될게."


"나는 이제 엄마의 손 대신,

내 글씨로 나 자신을 안아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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