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고백]
대한민국의 병원 구조는 견고한 성채와 같다. 의사를 정점으로 간호사, 의료기사, 그리고 행정직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서열은 남성 주도의 권위와 보수적인 규율로 무장되어 있다. 그 서열의 가장 낮은 곳, 법의 테두리조차 희미한 곳에 '간호조무사'인 내가 서 있었다.
첫 직장이었던 개인 병원에서 나는 전문 인력이 아닌 '유희의 대상'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상사들은 내게 스스럼없이 칼날 같은 말들을 던졌다.
"왼손으로 술 따르는 거 아니다."
"치마를 좀 짧게 입고 다녀야 눈요기가 되지."
"딸기는 꼭지까지 다 따서 대령해야지."
그들의 눈에 나는 환자를 돌보는 보건 의료인이 아니라, 옛말에나 나오던 '약방기생'에 불과했다.
두 번째 병원에서도 악몽은 이어졌다. 야간 근무를 서던 밤, 술기운을 빌려 찾아온 사무장은 점심(點檢)을 핑계로 내 곁에 앉았다. 그는 휴대폰 안테나를 뽑아 내 손등을 튕기듯 때리며 실실 웃었고, 귓불을 만지는 추행을 멈추지 않았다. 싫다고 거부해도 그는 끈적한 웃음을 흘리며 미적대었다. 그 비릿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가장 비참했던 순간은 동료로부터 날아온 비수였다. 치매 환자를 돌보다 성추행을 당해 수간호사에게 보고했을 때, 그녀가 내뱉은 말은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네가 어떻게 행실을 했길래 그래?"
여자의 적은 여자일 뿐이라는 서글픈 깨달음. 내가 환자의 혈압을 재던 숭고한 행위는 '행실'이라는 저급한 단어로 오염되었다. 무릎 진료를 빌미로 불을 끄고 바지를 벗으라던 원장의 권위적인 횡포 앞에 나는 또다시 굳어버렸다.
짐승들이 득실거리는 소굴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발버둥 쳤지만, 세상은 내게 "배운 게 도둑질이니 다시 돌아가라"라고 등을 떠밀었다.
종일 꽉 막힌 도시락통 속에 갇힌 듯 숨이 막힌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도시락통을 깨고 나오려 한다. 아직도 병원 어딘가에서 의사나 사무장의 성희롱과 폭언을 견디고 있을 수많은 '나'들을 위해 기록을 시작한다.
간호조무사는 의사법의 하위 계층이 아니다. 사회적 편견과 무시에 가로막힌 간호조무사의 인권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기를, 그리고 마땅히 누려야 할 단독법의 시행으로 우리도 '사람'으로 존중받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나는 더 이상 약방기생이 아니다.
나는 나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