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야한다는 절박한 명령
"나, 그냥 멍하게 있는 건데 왜?"
차갑게 날 선 목소리가 가슴에 박힌다. 아침에는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사람을 밀어내더니, 오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과잉 친절을 베풀며 살살 웃는다. 그 기괴한 다중인격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었다. 도움을 주려 다가가도 돌아오는 건 "나가, 안 도와줘도 돼"라는 날카로운 거절뿐이었다.
그 기이한 에너지에 눌린 탓일까. 눈알이 빠질 듯한 두통과 함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겨우 버티다 재어본 혈압은 200. 생체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와 억울함이 혈관을 타고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응급실로 가라는 의사의 처방을 듣고서도 바보같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려 했다. 책임감이라는 미련한 굴레가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동료의 한마디는 내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무너뜨렸다.
"뭐 하러 와. 일도 안 할 거면서."
다시 혈압이 솟구쳤다. 뇌출혈 전조 증상이라는 경고등이 머릿속에 번쩍였다.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살았던 내가, 정작 나를 죽이고 있는 현장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려 했다니.
집에 돌아와 밀린 택배를 정리하고 집안일을 마친 뒤 눕고 나니, 서러움보다 분함이 먼저 치밀어 오른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지만, 이런 악의적인 다중인격 캐릭터는 처음이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다가 필요할 때만 친절을 베푸는 그 가학적인 태도에 내 몸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내일 출근이 두려워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일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그 동료의 차가운 눈빛이 아니라, '나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명령이다.
뇌출혈이라는 무서운 단어 앞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다. 그 어떤 직장도, 그 어떤 책임감도 내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나를 '공순이'나 '소모품'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내 귀한 생명을 내어줄 순 없다..
조심하자. 그리고 기억하자.
'나는 지금 지독한 정서적 폭력의 현장에 서 있으며,
이 싸움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내 몸과 마음을 가장 먼저 보호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