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환절기 :웅크린 아이를 안아주다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던 시간들

by 지인

인생의 환절기 : 웅크린 아이를 안아주다


​1. 시계를 보는 의사와 삼키지 못한 알약
22살, 아빠의 손에 이끌려 처음 정신과라는 문턱을 넘었다. 아빠의 뒤통수를 향해 나는 평생 참아온 말을 비수처럼 던졌다. "아빤 방관자였어요. 내가 죽어갈 때도 모르는 척했잖아요." 뒤에 선 아빠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여유조차 내게는 없었다.
​처음 처방받은 우울증 약은 공포 그 자체였다. 알약을 삼키면 내 뇌세포가 파괴되고, 내 의지가 기계처럼 조종당할 것만 같았다. 두려움에 약을 삼키지 못한 채 다시 찾은 병원. 의사는 내 고통보다 손목 위의 시계를 더 자주 살폈다.
"상담 치료하실 건가요? 한 시간에 7만 원인데, 감당하시겠어요?"
나를 위아래로 훑는 그 오만한 시선 속에서 나는 모욕을 읽었다. "전 한 시간에 10만 원 하는 의사에게 가겠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온 그날 이후, 내게 병원은 상처 위에 덧난 흉터가 되었다.


2. 의대를 꿈꾸던 수험생, 간호조무사가 되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 입시 학원에 들어갔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암기하고 이해하며 의대를 목표로 정진했다. 하지만 내 안의 폭풍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쌌다.
​현실과 타협해 간호학원에 등록하고 재활의학과에 취업했다. 간호조무사와 코디네이터, 강사 자격증까지 따며 악착같이 버텼지만, 세상은 여전히 내게 차가웠다. 동료들과의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건 차별이었다. 물리치료사의 조모상에는 휴가와 조의금을 아끼지 않던 병원이, 나의 조부상에는 단 하루의 휴가조차 아까워했다. 사직 후 실업급여조차 나 몰라라 하던 그들이 원장의 부고 소식에 내게 조문을 강요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단칼에 거절하는 서늘한 용기를 냈다. "제가 갈 이유가 없습니다."


​3. 명상 속에서 만난 10살의 나
인복 없는 삶을 탓하며 찾아간 수련원에서 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깊은 명상 속, 어두컴컴한 방안에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를 보았다. 십 수년을 잊고 살았던, 아니 잊으려 애썼던 10살의 '나'였다. 아이의 뒤로 다가가 가만히 안아주자 가슴 속에서 뜨거운 용암 같은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우주소년단 캠프에서 선배 언니에게 빌려준 돈 5천 원. 돌려달라는 정당한 요구에 돌아온 건 "얘랑 놀면 죽여버린다"는 서슬 퍼런 협박이었다. 다음 날 버스 안에서 나를 찌르던 수십 명의 차가운 시선. 10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사회적 죽음'과도 같은 공포였다.


4. 함묵증이라는 긴 감옥
그날 이후 나는 입을 닫았다. 내가 입을 열면 주변이 파괴될 것 같다는 강박이 나를 지배했다. 머릿속에는 파괴적인 충동이 불쑥 솟구쳤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해부하고 싶고, 빵빵한 배를 터뜨려보고 싶은 끔찍한 공상들. 마음이 아파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엄마의 회초리는 내 마음보다 성적표를 먼저 향했다.
​학교는 내게 '공상을 찍어내는 공장'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 곳을 응시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일기장에만 쏟아냈다. 훗날 알게 되었다. 내가 앓았던 것이 '선택적 함묵증'이었다는 것을. 대화 대신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고,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던 시간들. 어른들의 세계가 혐오스러웠던 소녀는 그렇게 일기장이라는 유일한 친구 뒤에 숨어 청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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