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이득이다
입원실의 하얀 천장을 보며 며칠을 생각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도덕적 잣대가 분명해질수록 내 안의 고집과 아집은 단단한 벽이 되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너무나 선명하기에, 그렇지 못한 세상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유연하게 휘어지는 법을 잊고 매번 처참하게 부러졌다.
내 깊은 곳을 들여다보니 그곳엔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너 잘하고 있어'라는 칭찬에 목마른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더 엄격한 도덕의 갑옷을 입었는지 모른다. 그 갑옷이 너무 무거워 혈압이 200까지 치솟고, 사지가 경직되는 통증으로 비명을 지를 때까지도 나는 갑옷을 벗을 줄 몰랐다.
병원에서는 내게 '너무 예민하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계속 퇴사를 반복하는 네가 문제'라고 비수를 꽂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잘못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상처받은 마음을 호소하는 것이 정말 나의 결함인 걸까.
아니,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너무나 투명했을 뿐이다.
불의를 보면 화가 나고, 무례함에 치욕을 느끼고,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다. 다만 나의 투명함이 세상의 탁함을 견디기에 너무 얇았을 뿐이다. 남들은 적당히 한 눈 감고 넘어가는 일을, 나는 온몸의 감각을 열어 다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퇴원 후에도 여전히 세상은 휘청거린다. 이비인후과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데, 서 있기만 해도 뒤로 넘어갈 듯 어지럽고 울렁인다. 머리는 쉬지 않고 돌아가며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에게 다른 말을 해주기로 했다.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그 말..
"지인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좀 쉬어도 돼. 너는 잘못이 없어."
나만 아프고 돈도 못 벌고 손해만 보는 것 같아 억울함이 밀려오지만, 이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나를 탐색하기 위한 가장 고귀한 시간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옳고 그름'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이제는 '내가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한다.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24시간 혈압계가 기록한 119라는 평온한 숫자처럼, 내 마음의 수치도 이제 평온을 찾아가길 기도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자. 조금 손해 보면 어떤가.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보다 더 큰 이득은 세상에 없다. 나는 나를 믿는다. 이 파도를 딛고 일어설 힘이 내 안에 있음을.
"고생 많았어. 사랑해, 지인아." 거울 속의 나에게 처음으로 진심 어린 고백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