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벽인 것 같은 삭막한 광장에서 21살 나에게 보내는 편지
마흔여섯의 내가 스물한 살의 나를 본다.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공기는 여전히 내 피부 위에 서늘하게 남아 있다.
"지인이에게 치료를 받게 하시는 게 어떻시겠어요?..."
그 권유가 부모님께 전달되던 날, 나의 스물하나엔 조종(弔鐘)이 울리는 듯했다. 평생을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내게 '정신과'라는 단어는 내 존재가 통째로 무너지는 선고와 같았다. 하지만 내 안의 폭풍을 감당할 힘이 더는 없었기에, 나는 생전 처음 그 낯선 문턱을 넘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21살의 그 어린 내가 병원 대기실에 앉아 떨고 있을 때, 사실은 46살의 내가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는 것을. "괜찮아, 지인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그저 너무 맑아서 세상의 먼지를 다 뒤집어쓴 것뿐이야"라고 말해주던 미래의 내 목소리를, 그때는 듣지 못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예민한 촉수를 가진 채 혈압 200의 고비를 넘기고, 직장에서의 부당함에 사직서를 던지며, 어지럼증 속에서 휘청거린다.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절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21살의 기억을 소환하며 깨닫는다.
나의 46세는 21세의 내가 지켜낸 '생존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처음 정신과 문을 열었던 그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천지인'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1살의 내가 병원 문을 열었기에, 46살의 내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옹알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다시 인생의 미로 속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하지만 25년 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제 나는 길을 잃은 나를 '실패자'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글 쓰는 사람'이라 부른다.
사방이 벽인 것 같은 이 삭막한 광장에서,
21살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고마워, 그때 포기하지 않고 그 문을 열어줘서. 덕분에 나는 46살의 작가가 되어 너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게 됐어. 이제는 내가 너를 지킬게.
우리 조금만 더 천천히, 즐겁게 가보자."